"헉~겁나는 블랙컨슈머"..욕설.협박.수천만원 요구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지희 기자] “소비자가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 등 2천만원을 요구해 더 이상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상한 식품을 먹고 아이가 단순 배탈이 났는데 20세까지 보험을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변질된 음료를 마시고 병원 진단서 등 근거 자료 없이 500만원을 요구했다”, “식품에서 나온 벌레가 ‘내장이 제거된’ 박제용 곤충이었다”
소비자와 기업의 중간 입장에서 중재를 진행해 온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업체 담당자들로부터 들었던 ‘블랙컨슈머’ 사례들이다.
실제로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가 올해 2월 발표한 ‘블랙컨슈머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51개 식품업체 중 48개 업체(94.1%)가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겪은 블랙컨슈머의 대표적인 부당한 요구 유형으로는 근거 없는 피해보상 요구(43.1%), 보상기준을 넘는 피해보상요구(23.5%), 간접적 피해보상요구(15.7%), 상담자에 대한 부당한 언행(15.6%), 불만사항을 근거로 언론 유포 협박(2.0%) 등이었다.
이같이 블랙컨슈머가 늘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업들의 소비자 응대 태도에도 기인한다.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 제도나 규정을 넘어선 보상으로 우선 '입막음'하려는 저자세를 보임으로써 일부 소비자들의 부당 요구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을 상대로 고의적, 상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 그러나 소수의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 블랙컨슈머 욕설은 기본, 협박 메일에, 수천만원 요구
사례= 지난 9월 구매한 지 1년도 안된 컴퓨터가 반복 고장을 일으킨다며 불만을 제보한 김 모(남.43세)씨 그러나 업체 담당자로부터 확인한 내용은 김 씨의 제보와는 판이했다. 모델명까지 확인한 김 씨 컴퓨터의 판매 기록은 2년 전으로 돼 있었으며 한차례 교환까지 받았던 상태였다.
업체 담당자는 “상담직원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심한 욕설도 서슴지 않았으며 심지어 대표이사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한 차례 무상 교환까지 받아갔다. 그런데도 2~3개월에 한 번씩 이렇게 불만을 제기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사례= 지난 9월 대형 마트에서 쇼핑하던 도중 자신의 과실로 벽에 부딪힌 심 모(여.35세)씨는 업체에서 보험처리를 거부하고 있다며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제보를 해왔다. 그러나 업체 담당자와 보험손해사정인으로부터 내용을 확인한 결과 심 씨가 혹시 모를 후유증에 대비해서 5천만원을 요구하며 보험 처리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
◆기업의 '묻지마' 보상도 문제
동아제약은 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제보된 삽입형 생리대 철사 이물질을 제보한 최 모 씨에게 제품을 회수하거나 조사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6만원을 '묻지마' 보상했다. 동아제약 홍보실 황지영씨는 "제보자에게 병원 검사비등으로 6만원을 주고 이물질을 회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아제약 측은 이후 이물질을 수거해 분석한 뒤 제보자에게는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조사 결과 요구에 "전혀 관련 없는 물질이었다"고 마지못해 답변했다.
이물질 제보자에게 아무런 조사 없이 묻지마 보상을 함으로써 의혹을 덮으려고 한다는 의혹과 함께 보상을 앞세우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
◆ 소비자 문제행동 3~4년 전에 비해 ‘매우 증가’
특히, 최근에는 ‘소비자 문제행동’ 또한 끊이지 않아 소비자와 기업 간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의 문제행동이란 소비자가 사업자로부터 제품(서비스)을 구매·사용· 불만제기 과정에서 사업자 및 제 3의 기관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에 불만을 과잉 표출하는 행동을 말한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소비자 상담이 많이 접수된 상위 27개 업체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업체의 소비자상담 담당자들은 3~4년 전과 비교해 소비자의 문제 행동이 ‘매우 증가’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상담 업무 담당자들은 보상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기대 수준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인터넷 공개, 다른 소비자상담기관· 단체로 문제 확대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 보상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기대 수준 가장 문제
사례=지난해 9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디지털 카메라를 구매한 나 모(여.44세)씨는 카메라의 연결 케이블이 누락됐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취재도중 확인한 내용은 디지털 카메라의 구매 시기가 7개월 전인 2월이었다는 것.
나 씨는 “카메라를 잘 안 다뤄서 케이블 선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데 무상으로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판매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6개월도 더 지난 일이다. 사용 중에 분실하고 이제 와 원래 없었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으냐? 무상제공은 불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례=지난해 9월 모친이 마트에서 구매한 우유를 먹고 식중독을 일으켰다고 제보를 해 온 김 모(남. 35세)씨. 그러나 김 씨의 모친은 단골 마트에서 시일을 두고 두 차례 우유를 구매했고 문제의 우유가 언제 구매된 우유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또 병원에서도 우유 때문에 식중독이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없어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마트 관계자는 “불만을 늦게 제보하셔서 CCTV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판매 내역을 확인했으나 당시 판매된 우유는 모두 유통기한 이내의 정상 제품들이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들도 피해를 입었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유사한 피해사례나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피해와 관련해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들도 블랙컨슈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말고 중립적인 제3의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분쟁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