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축구공 맞고 사망..누구 책임?
2007-05-18 뉴스관리자
길을 가다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 숨진 50대 가장(家長)의 외동딸 박성희(25) 씨는 눈물을 애써 참고 있었다. 졸지에 아버지를 여읜 박씨는 축구장을 설치ㆍ관리하는 서울 구로구청장과 축구공을 찬 A씨를 상대로 낸 1억1340만원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뒤 망연자실해 있었다.<5월 16일 보도>
17일 저녁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기자와 만난 박씨는 “아빠는 엄마가 몇 년 전 돌아가신 뒤로는 그렇게 즐기던 술 담배도 끊고 오직 저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분이었는데…. 멀쩡한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간 게 잘못인가요?”
20년 동안 지각이나 결근 한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아파트 주차장 출장 세차일을 해온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에 가슴이 저리고, 친할머니(84)와 함께 생계를 이어나갈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한 듯했다.
박씨 아버지의 죽음은 말 그대로 어이가 없었다. 지난해 6월 25일 오후 4시30분께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변을 가고 있을 때, 도로 옆 축구장에서 공이 날아왔다. 축구공은 피할 틈도 없이 페달에 끼었고, 박씨 아버지는 넘어지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가 부딪혀 뇌간마비로 숨을 거뒀다.
박씨는 ‘억세게 운이 없는’ 아버지의 억울함이라도 풀어볼 생각으로 모 통신업체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면서 모아둔 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라를 상대로 하는 거면 이길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충고를 했다”며 “1심에서 졌으니 애초에 시작을 잘못한 건 아닌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도 극히 ‘이례적인’ 이번 사건 판결을 두고 고심을 많이 했다. 김선일 남부지법 공보판사는 “사건 자체가 워낙 이례적이라 유사 사건이나 판례를 찾기 힘들었다”며 “유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고, 재판부도 이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려해 판결했지만 이번 사건은 전혀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박씨의 소송대리인인 전진호 변호사는 “형사사건의 경우 국가가 범죄를 제대로 방지하지 못한 측면을 인정해 피해자 보상을 해주지만 이 경우는 범죄사건이 아니어서 구제할 규정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박씨는 어버이날인 지난 5월 8일 일산 청아공원에 있는 아버지의 납골묘를 찾았다. 시집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고, 돈 벌어서 해드리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정작 아버지가 없어 사과와 하소연만 남기고 돌아왔다. 박씨는 “이길 수 없다고 해도 지금 전 하소연할 곳도 없어요. 돌아가신 아빠의 자리를 돈이 채울 수 없다는 건 알아요. 억울함이라도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라며 자리를 떴다. 박씨는 항소할 생각이다(헤럴드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