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피플] 뮤지컬 ‘모차르트!’의 윤형렬

카리스마 뒤 인간의 얼굴 간직한 콜로레도

2010-01-20     뉴스관리자

2007년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이후 노담)’ 초연 무대. 공연장을 채우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 물건(?) 하나 나왔구나.” 윤형렬. 프로필에 뮤지컬 경력이라곤 단 한 줄도 없는, 이름도 낯선 가수가 ‘노담’의 주역 콰지모도를 꿰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 속을 가득 채웠던 물음표들이 단 하나의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 듯 허스키하고 울림 가득한 그의 소리는 가련한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 자체였으니. 아니나 다를까. 데뷔작으로 윤형렬은 신인상과 인기상 등 4개의 상을 휩쓸었고 이후 뮤지컬 ‘햄릿’, ‘아킬라’의 주인공을 맡으며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조연을 맡아 무대에 선다. 연초 화제의 중심에 있는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다.


콜로레도로 연기의 디테일 배워요

“모차르트를 욕심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주연이 탐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돌아오는 솔직한 대답이다. 오디션에 모차르트의 노래를 준비해갔던 윤형렬은 콜로레도 대주교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유희성 연출가의 권유에 마음을 바꿨다. 콜로레도는 당시 최고 권력자로 모차르트의 자유로운 영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위와 보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윤형렬은 콜로레도와 자신의 교집합을 ‘보수성’에서 찾고 있다며 웃는다.

“저도 보수적인 남자예요. 여동생이 밤 10시 넘어서까지 집에 안 들어오면 전화해서 꼭 귀가 시키고 (웃음). 콜로레도는 굉장히 박학다식한 사람이라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꿰뚫어보고 어떻게든 그를 자신의 밑에 두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요. 처음엔 무척 분노하다가 나중에는 순수하게 그의 음악을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죠. 등장하는 횟수가 4,5번에 불과할 정도로 비중이 작은 역이지만 카리스마라는 가면 뒤에 언뜻언뜻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인물이라 파고들수록 흥미로워요. ‘노담’으로 감정의 폭발을 알았고 ‘햄릿’으로 다른 캐릭터와 호흡하는 법을 배웠다면 ‘모차르트’는 연기의 디테일적인 부분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작품이에요.”

20일 개막하는 ‘모차르트!’는 세계적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그래미상 수상자 실베스터 르베이가 만든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뮤지컬이다. 클래식과 록을 합쳐 놓은 듯한 음악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윤형렬이 ‘모차르트!’ 오디션이 있기 전부터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이유 역시 음악 때문이다.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음악만 들었는데도 너무 좋은 거예요. 지금은 좀 다르지만 처음에 들었을 땐 뭐랄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록적인 느낌과 ‘지킬앤하이드’의 섬세한 현의 선율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모차르트!’에 쏟아지는 관심이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화려한 캐스팅 때문. 임태경, 박건형, 서범석, 민영기, 박은태. 배해선, 신영숙, 정선아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에 최고의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까지 가세한 명단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사랑받는 윤형렬이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가 있는지. 캐스팅 소식 들었을 때 너무 벅찼어요. 쟁쟁한 선배님들과 함께 하다니 엄청난 영광이죠. 준수 씨도 뮤지컬 경험은 없지만 실력 있는 가수고... 배울 점도 많지만 한편으론 제대로 못하면 완전 묻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어요. 특히 저와 더블 캐스팅인 민영기 선배님이 워낙 대포알 성량이시라 (웃음)... .”


무명 가수에서 뮤지컬 샛별로

윤형렬의 출발은 가수였다. 중1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운 그는 고등학교 시절 밴드 객원 보컬로 음악을 시작했다, 조성모 모창을 할 정도로 고운 미성의 소리는 밴드 활동을 통해 조금씩 굵고 허스키해졌고 ‘노담’의 콰지모도를 통해 현재의 풍부한 질감, 일명 ‘목욕탕 에코’ 소리가 완성되었다. 음악을 인생의 업으로 삼으리라 결심한 것은 중앙대 영문과 진학 후 ‘시커스’라는 밴드에 보컬로 소속돼 본격적으로 음악에 뛰어들면서부터. 영화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 러브홀릭 출신의 이재학 음악감독 등이 밴드 선배라며 슬쩍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에서 밴드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엿보인다.
윤형렬은 토익 시험 한번 본 적이 없는 영문학도다. 직장을 갖기 위한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토익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니... 본인은 철없이 노느라 그랬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음악 이외에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 하는 무대포 정신으로 음악에 뛰어들었죠. 아버지 반대가 심하셨는데 제가 워낙 막무가내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면 인정해주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곡을 써서 나간 게 2003년 KMTV 가요제였고 거기서 은상을 받았어요. 두 번째 쓴 곡이 유재하가요제에서 또 은상을 받았고요. 작곡을 배운 적도 없는 애가 기타 좀 뚱가뚱가 하더니 상을 받으니까 아버지가 ‘우리 아들이 음악의 신동이구나. 진즉 너의 재능을 일깨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시며 인정해주셨어요 (웃음).”

윤형렬은 그렇게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기획사에 들어가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어렵사리 내놓은 데뷔 앨범은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우수 신인 음반에 선정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좀처럼 자신을 알릴 기회를 잡지 못했다. 10년 넘게 간직해 온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망가질 위기에 처했고 윤형렬은 절망에 빠졌다. 그 때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를 살린 뮤지컬,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파

“제 노래를 들으신 ‘노담’ 기획사로부터 콰지모도 오디션 제의를 받았어요. 그렇게 생각지도 않던 뮤지컬을 하게 됐죠. 그 땐 뮤지컬을 쭉 하겠다... 뭐 이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어요. 노래할 수 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행복해서 마냥 좋기만 했죠. 심지어 제 출연료가 얼만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우연히 통장을 확인해 보니 1년간 가수 활동을 해서 번 것과 노담 출연료를 기획사가 정산해서 넣어놨는데 260만원이더라고요. 연봉이 260만원인거죠 (웃음). 근데 그 액수도 당시엔 엄청 크게 느껴졌어요. 제 힘으로 처음 번 돈이라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럴 정도로 그저 하루하루가 감사했어요.”

등이 굽은 곱추를 연기하느라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아가며 콰지모도로 무대에 선 것이 3년여. ‘노담’은 윤형렬의 대표작이 된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됐다. 그의 콰지모도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뒤이은 작품에서도 그 흔적을 찾는 관객이 많았기 때문.

“최근에 인터넷을 끊었어요. ‘햄릿’을 할 때는 ‘쟤는 화만 나면 콰지모도로 돌변한다’, ‘아킬라’를 할 때는 ‘직립보행하는 콰지모도’다... 이런 글들을 인터넷에서 보면 상처가 되더라고요. 기분 상하고 말면 괜찮은데 그걸 무대에서 의식하게 되면 상당히 힘들어요. O형이라 금방 잊어버리긴 하지만 (웃음). 무서운 건 우연찮게 그런 글을 올린 사람을 알게 됐는데 제 앞에선 좋은 말만 해주던 분이었던 거예요. 사람 앞에 선다는 게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유명세라는 걸 치르는 것 같다는 윤형렬. 하지만 그에게 ‘노담’은 얻은 것이 훨씬 많은 특별한 작품이다. ‘노담’으로 맺은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또한 그러하다. ‘노담’으로 만난 김성민, 문종원, 최수형과는 ‘Mr. Right’이라는 그룹까지 결성했다.

“원래 이름은 포원(4ONE)이었는데 포미닛과 투애니원의 합성어 같더라고요. 검색 하면 올포원, 리스트포원이 뜨고... 그래서 좀 고급스럽고 재밌는 이름으로 바꿔보자 해서 지은 게 ‘Mr. Right’예요. 이상형이란 뜻인데, 저희 4명이 생긴 거나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넷 중에 하나 정도는 누군가의 이상형이지 않을까 하는 교만한 생각으로 지었어요 (웃음). 저희는 30대의 아이돌 그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웃음). 작년 크리스마스에 대구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주셔서 정말 기분 좋고 감사했어요.”

가수의 꿈을 접지 않은 채 우연히 들어선 뮤지컬 배우의 길. 처음 뮤지컬을 시작할 땐 해보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았지만 지금은 그저 시켜주면 다하고 싶다는 윤형렬에게 뮤지컬은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꿈이 됐다. ‘배우’라는 소리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다지기 위해 학업도 입대도 미룬 상태. 내공을 좀 더 쌓아서 소극장 무대에도 서고 싶고, 노래의 도움을 받지 않는 본격 연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단다.

“시작은 가수였지만 제가 살 수 있게 해준 건 뮤지컬이죠. 전 뮤지컬 배우로서 노래하는 것과 가수로서 노래하는 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점에서 뮤지컬이나 대중가요나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지금까지 분수에 넘치게 제 실력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정말 열심히 해서 잘하는 배우라는 소릴 듣고 싶어요.”

(뮤지컬 ‘모차르트!’ : 1월 20일부터 2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유희성 연출, 임태경, 박건형, 박은태, 김준수, 민영기, 윤형렬, 서범석, 배해선, 신영숙, 정선아 등 출연)

[뉴스테이지=조수현]
(뉴스검색제공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