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 거세당한 꿈이여 부활할지니!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2010-02-02 뉴스관리자
라만차(La Mancha)에 가본 적이 있다. 라만차는 에스파냐 중남부의 고원지대 남부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바람이 많이 불고 찬란한 햇빛이 내리쬔다. 여기는 톨레도 산악지대에서 쿠엥카산맥의 서쪽 지맥까지, 라알카리아에서 시에라모레나까지 사이에 펼쳐진 불모의 해발고도 680~710m의 고원지대다. 넓은 평야 끝에는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 풍차들이 늘어서있다. 누가 그 풍차를 보고 꿈을 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평야를 지나는 늙은 기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옆에는 종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있다. 그들이 풍차를 향해 간다. 나와 같은 꿈을 꾸나 싶었다. 아뿔싸! 갑자기 그가 풍차로 돌진한다. 이어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다. 그러더니 변장을 한 거인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을 물었다. 이름만 물었을 뿐인데 늙은 기사는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썩을 대로 썩은 세상, 죄악으로 가득하구나. 나 여기 깃발을 높이 들고 결투를 청한다. 나는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운명이여 내가간다. 거친…….’ 아, 이 비장한 눈빛의 기사 이름이 돈키호테다. 그런데 기사라고 하기엔 좀 늙었다. 그리고 관절염에 걸렸는지 부실해 보인다. 칼을 들 기력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가 산초와 함께 황당한 모험을 시작한다.
- 가장 초라한 몸으로 가장 큰 꿈을 꾸는, 세상의 기사

세상이 돈키호테를 비웃는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진지하다.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돈키호테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친절과 예의, 용기를 온 몸으로 실천해낸다. 가만히 들어보면 그의 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 돈키호테가 우스워서 손뼉을 치며 자지러지게 웃는 우리에게 세르반테스가 소리친다.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입니까? 아니요, 아니요!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 될 수도 있다오. 그중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과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죠!” 제정신이 아닌 세상에서 문제없이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미친 게 아닌가. 정신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풍차 같은 현실을 향해 돌진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돌아오는 돈키호테가 말없이 우리를 다그친다.
- 불가능한 꿈을 이룬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자신이 위엄 있는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늙은이 알론조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그는 비참해진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비난 받았을 때도 찾아오지 않았던 절망이 이제 검은 옷을 입고 다가온다. 이상과 꿈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삶, 남은 일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뿐이다. 절망하는 알론조, 황당한 돈키호테, 작가 세르반테스,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정성화의 연기는 대단했다. 그의 진지하면서도 익살맞은 모습들을 보는 동안 인간 정성화는 보이지 않을 정도. 산초의 이훈진과 알돈자의 김선영을 비롯, 모든 조연 및 앙상블들 역시 속이 꽉 찬 무대를 선보였다. 인간을 체스 말로 비유해 상황을 체스로 묘사하는 등의 재치와 적절한 무대변화, 매력적인 캐릭터와 마음을 울리는 음악의 결과는 커튼콜에서 나타났다. 쏟아지는 기립박수 한가운데 돈키호테가 서 있었다. 우리의 잃어버린 꿈의 모습을 하고 꿋꿋하게 서 있었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