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절감기가 사람 수명 절감한다"

'동병상련' 모임까지 생겨..본보 보도로 실상 드러나

2010-02-11     차정원 기자

[소비자가만드는신문=차정원 기자]"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거의 피를 말립니다. 수명을 단축합니다" 


정부의 핵심 정책인  녹색성장 바람을 타고 전력 소비량을 줄여주는 ‘전기절감기’가 인기를 얻고 있으나  효과를 검증받지 않은 고가의 제품들이 마구잡이로 유통돼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만 10여건의 피해 제보가 집중 쏟아졌다.  판매업체들은 대부분 관련 지식이 어두운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전기세 절감효과가 탁월한 신기술 제품임을 강조하고 효과가 없을시 100% 환불을 구두로 약속하거나 계약서에 명시해 소비자의 경계심을 늦추는 수법을 사용했다. 정부 사업까지 빙자해 현혹하기도 한다.

결제 과정에서는  할부 기간을 임의로 바꾸거나  ‘관리비’로 가장해 할부금융 대출금을 납부하도록 유도해 소비자 피해를 야기했다.

제품 사용 후 효과가 없다는 불만을 제기하면 의미 없는 절감 분석표를 보내 입막음 한 후 항의가 거세질 무렵 종적을 감추는 수법이 사용된다. 어렵게 제조사를 찾아내면 제조사는 유통을 담당하는 총판에 책임을 전가하고 총판은 다시 사라진 판매처나 영업사원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유통된 제품들은 비단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공장 등 전력 소모가 심한 장소에서는 정전 현상을 유발해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등 이중 삼중의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 사진 = 전기 절감기 피해자들의 공동 대응 카페




피해가 늘어나면서 피해자들은 최근 포털 다음에 공동 대응 카페(http://cafe.daum.net/keseco)를 개설하고 법적 대응을 천명하고 있다.  

카페 운영자는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도움으로 피해 상황 파악에 큰 도움을 얻었다. 현재 이를 바탕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다”고 밝혔다.


▲사진 = KESECO홈페이지 공지사항


이때문에 공식 기관의 인증을 받은 전기절감기 제조업체의 피해도 심각했다.  전기절감기 관련 특허를 갖고 있는  제조사 KESECO(www.keseco.com ) 관계자는 “KESECO의 제품을 모방한 전기절감기를 구입한 소비자들의 항의가 KESECO로 빗발치고 있다”며 “수많은 피해자가 타사의 제품을 KESECO 것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판매가 급감해 현재 국내 판매를 전면 중지한 상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KESECO사는 ULTRA라는 전기 절감기를 세계 53개국에 판매중이다. 이 제품은 전기저항에 의한 손실을 줄여 절전 효과를 보는 ‘전류형 전기 절전 방식이라는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2005년 2월 등록을 완료했다.


◆ 허울뿐인 절감 분석표 던지고 ‘잠적’

지난해 8월 부산시 초량동의 김 모(남.54세)씨가 운영하는 모텔로 케세코코리아의 영업 사원이 방문 했다.

영업 사원은 “설치시 전기세 절감효과가 15%이상이다. 제품 사용 후 효과가 없을시 6개월 이내 100%환불 가능하니 일단 설치 해 보라”며 김 씨를 설득했다. 김씨는 ‘손해 볼 것 없겠다’는 생각에 140만원을 주고 즉각 설치했다.

몇 달을 사용했지만 전기세는 줄지 않았다. 김 씨가 항의하자 업체는 10월 말 절감 분석표가 담긴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절감 분석표를 아무리 살펴봐도 절감 효과를  파악 할 수 없었다. 절감 분석표는 단순히 당월 전기 사용량과 작년 동월 사용량을 비교한 그래프에 불과했다. 그 당시 모텔 상황과 현재 상황이 같을 리 없으니 단순히 총 전기 사용량만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그나마도 올해 사용량이 더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계약당시 김 씨는 36개월 할부 결제를 요구했지만 12개월로 결제돼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카드사에도 민원을 넣어 봤지만 업체의 협조 불응으로 도와줄 수 없다는 응답이 왔다.

10월 중순경 김 씨는 환불을 요구하기 위해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케세코코리아 본사에 항의하자 “담당 사원에게 연락하도록 조치하겠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김 씨가 재차 본사에 강력하게 항의해  올해 1월 중 새 제품으로 교환을 약속 받았지만 소식이 없었다.

재차 항의해 보려 했지만 업체의 대표전화는 이미 신호음조차 가지 않는 상황. 

변호사와 법적 조치를 협의했으나 제품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모호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취재팀이 수차례 업체 대표전화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사진 = 기사와 무관함(출처 - KESECO 홈페이지)




◆ 용량 안 맞는 제품에 정전현상.. 업체 조치는 ‘눈가리고 아웅’

군포시 금정동에서 정비공장을 하는 박 모(남.34세)씨는 작년 8월 케세코코리아 영업 사원의 방문을 받아 업소에 전기절감기를 설치했다.

영업사원은 높은 전기 절감효과를 설명하고는 6개월 이내 100%환불 조건을 걸었다.  마침 공장 전기세가 많이 나와 걱정이었던 박 씨는 그 자리에서 180만원 상당의 제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제품을 설치 한 후 공장의 전기가 정전되는 현상이 수차례 발생했다. 박 씨는 AS를 받기 위해 계약서상의 연락처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없어진 번호라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뿐만 아니라 영업 사원의 말을 믿고 매달 관리비 명목으로 납부하던 돈은 할부 금융 대출금이었다. 대출금을 완납하기 전까지 애물단지 전기절감기는 카드사의 소유인 것.

박 씨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제품을 소개한 영업사원은 물론 판매 업체도 연락이 되지 않아 손 쓸 방도조차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박 씨는 이곳저곳 수소문 해 보았고 10월경 카드사로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 회사는 물건을 판매한 총판이며 제조사와는 연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 씨는 즉각 제조사에 책임을 물으며 환불을 요구했지만 "제품 판매 및 계약 관련 업무는 총판에 일임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하는 수 없이 AS를 요구했고 “곧 방문하겠다”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다시 수차례 항의끝에  1월 초 제품을 분리해 택배로 보내달라는 제조사의 답변을 듣긴 했지만 박 씨는 사용자가 임의로 제품을 조작해 문제가 발생하면 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약관이 마음에 결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에 대해 제조사 관계자는 “업무가 밀려 AS기사가 방문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공장의 전기가 정전되는  현상은 설치한 전기 절감기의 용량에 관계 된 것으로 보인다. 제품을 택배로 보내면 AS해 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 “한전에서 나온 건데..” 정부사업 빙자

지난해 7월 9일 경산시 중방동의 김 모(남.39세)씨는 케세코코리아라는 회사 직원으로부터 전기절감기를 권하는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전형적인 허위 광고 멘트와 함께 “한전과 협의 하에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에너지소비 절감 사업의 일환으로 나온 상품이다”며 제품을 소개했고 김 씨는 145만원에 제품을  구입했다.

김 씨는 제품을 5개월가량 사용했으나 전기세는 한 푼도 줄지 않았다. 환불을 요구하기 위해 계약서상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멘트가 나와 김 씨의 등줄기를 싸늘하게 식혔다.

당황한 김 씨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름이 유사한 케세코ESC라는 회사의 고객센터로 문의하자 상담원은 “당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발뺌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취재로 케세코ESC는 제품의 제조사임이 밝혀졌다. 케세코코리아는 제품의 판매를 전담하는 회사. 제조사는 일절 판매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 케세코ESC의 주장.

케세코ESC 담당자는 “판매 건수 당 지급되는 인센티브를 노린 판매사원이 과도한 광고를 한 것 같다”며 "해당 제품은 영업 사원이 언급한 ‘한전’이나 ‘정부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씨와 계약한 영업지점의 전화가 불통인 이유에대해서는 “해당 대리점이 김 씨와 계약 후 영업을 중지해 전화연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케세코코리아는 지난달 중순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중재로 김 씨에게 환불을 약속했으나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