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in] 연극 ‘막무가내들’
사채업자 박용우
유달리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논리적이고 순발력이 있는 그들은 사막에서 전기장판을 팔아오라고 해도 살아남았을 족속이다. 활발하고 선천적으로 얼굴이 두꺼운 그들은 금세 하나 둘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설득에 들어간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사(詐)짜’ 기질이 있다고 표현하는데 연극 ‘막무가내들’ 속 사채업자 박용우도 딱 그런 타입이다.
1억 원의 빚을 진 지리산 거주 여성 김옥분을 찾기 위해 사채업자 박용우의 모험은 시작된다. 김옥분은 흉가에 사는 처녀귀신 옥빈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칭한 이름이다. 사채업자라고는 하지만 말단 직원이고 워낙에 소심해 흉가에 사는 김옥빈(처녀귀신)을 보자마자 기절하는 꼴을 보면 어떻게 사채업자가 됐을까도 싶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면 사정은 달라진다. 저승사자를 대신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옥빈을 설득한 건 바로 박용우였다. 그가 말을 하면 모두가 그의 말에 ‘혹’ 하고 넘어간다.
김옥빈은 지리산 흉가를 천년 째 지키고 있는 처녀귀신이다. 1년에 한 번씩 천 번 착한 일을 하면 사모하는 서방님을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을 믿고 이제 그 착한일도 한 번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장부책을 들고 다니며 이 사람 저사람 들쑤시고 다니는 저승사자는 이런 김옥빈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은 자이자 동시에 김옥빈을 짝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저승사자는 번번이 옥빈의 고집에 지고 만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요지부동 ‘말빨의 달인’ 박용우 선생이다.
박용우는 금세 낯빛을 바꾸고 옥빈에게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한다.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의 진짜 속내는 감춘다. 이제부터 옥빈이 흉가를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야만 하는 10가지 이유가 줄줄 흘러나온다.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즉자적인 말솜씨는 실로 대단하다. 이 솜씨 공부하는데 써먹었으면 진짜 ‘사(士)짜’ 소리 들었을 법도 하지만 저승사자의 장부책에 기록된 바로 그는 40년간 노숙자로 살다가 치질로 사망. 이 얼마나 억울한 인생이란 말인가! 이를 안 박용우는 더욱 적극적으로 옥빈을 설득해 저승사자의 일을 대신 해주려고 한다. 그 대가로 받는 건 ‘인생 성형’.
‘영웅을 기다리며’의 작가 이주용이 대본을 쓰고 ‘둥둥 낙랑둥’ ‘왕은 죽어가다’의 배종근이 연출을 맡았다. 박용우 김옥빈 저승사자 그리고 멀티맨 퇴마사 역에 각각 박기덕, 신미영, 김희진, 이장원이 출연한다. 코믹호러 연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호러도 코믹으로 승화시키는 ‘막무가내들’은 대학로 아트홀 스타시티 2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최나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