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CEO들의 위기..라응찬, 김승유 회장의 선택은?

2010-02-11     임민희 기자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좌)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우)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사외이사 개선안에 따른 금융권의 물갈이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겸직하고 있는 은행 총수들의 거취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임기가 만료되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1년 임기를 남겨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거취 여부는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다.

20년째 신한금융을 이끌어온 라 회장과 14년간 하나금융의 총수자리를 지켜 온 김 회장은 리더십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으며 국내는 물론 외국계 주주들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과 유착 등 금융사들의 지배구조에 불만을 제기, 지난달 26일 은행연합회가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도입하면서 금융사의 1인 지배체제에 제동을 건 것.  

사외이사 개선안을 따를 경우 라 회장과 김 회장은 원칙적으로 의장직 겸직이 어렵고, 이를 유지한다고 해도 선임사외이사를 둬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선임은 물론 CEO의 이사회 의장 겸직 문제까지 압력을 행사하는데 대해 '지나친 개입'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부, 금융지주사 '황제식 경영' 제동..회장들의 선택은?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서 촉발된 금융권 지배구조 문제가 신한, 하나금융 CEO에게까지 토네이도급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한과 하나금융은 CEO가 10년 이상 장기집권하며 권력이 1인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왔다. 때문에 이번 개선안은 표면적으로는 사외이사 자격기준 강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기업 내에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CEO들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다.

사외이사 개선안의 핵심은 CEO와 이사회 의장을 원칙적으로 분리하며 단, 겸직이 불가피할 경우 사유를 공시하고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토록 하고 있다. 개선안을 따르지 않을 경우 경영평가 반영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금융당국의 엄포가 이를 방증한다.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91년 은행장에 취임한 이래 20년 동안 CEO로 지내다 올해 3월 임기가 끝나는 라응찬  회장은 리더십과 경영능력을 인정, 일본계 주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라 회장은 금융권의 'M&A' 귀재로 불리며 강력한 리더십으로 미래 지향적인 경영전략, 내실위주의 경영관행 정착 등 도전과 변화를 혁신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인 신한은행을 국내 2위 은행으로 부상시켰고 금융지주사 출범 후에는 굿모닝 증권과 조흥은행 인수로 대형화에 성공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주주가치 측면에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라 회장은 국내외 지주들의 신망이 높아 일찌감치 연임 가능성이 예상됐으나 이번 사외이사제도 개편으로 연임에 따른 심적 부담은 물론 이사회 의장 겸직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1997년 은행장 취임 후 14년 간 하나금융을 이끈 김승유 회장도 경영능력을 인정, 외국인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승유 회장은 1971년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창립멤버로 들어와 충청, 보람, 서울은행을 인수하며 단기간에 우량은행으로 성장시킨 일등 공신이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아있어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이사회 의장 겸직 문제를 3월 주주총회까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로선 라 회장의 결정을 지켜본 후 거취를 정하겠다는 구상이다.  


'권력견제' VS '관치'...3월 주총서 보직여부 판가름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3월말쯤 주총에서 라 회장의 연임과 겸직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라 회장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도 "아직 1년 임기가 남아 있고 겸직에 대한 논의는 3월 말쯤 주총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모든 은행권에서 사외이사 개편 작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신한과 하나금융은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와 관련해 여론 추이를 살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 내에서는 실상 겸직이 불가피하다는 사유를 공시하고 선임사외이사를 둔다고 하더라도 향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리로 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압력을 행사해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선임은 물론 회장들의 의장 겸직까지 간섭하는 게 맞느냐며 불만을 제기하는 등 여전히 관치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은행과 신상훈 사무관은 "회장과 의장 겸직 문제는 금융 CEO들이 결정할 문제로 분리가 어려울 경우 사유를 공시하고 선임사외이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며 "이번 사외이사 개선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권고사항"임을 강조했다.   

지배구조에 대한 금융당국의 매서운 칼날 속에 중대 기로를 맞고 있는 라 회장과 김 회장이 의장직을 과감히 버릴지, 아님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