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의 뮤지컬프리즘2] 뮤지컬 '모차르트'

4인4색 매력

2010-02-22     뉴스관리자


2010년 벽두,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은 ‘모차르트!’이다. 브로드웨이 쇼 콘셉트 뮤지컬, 엔드루 로이드 웨버로 대변되는 영국 뮤지컬을 거쳐 다양한 장르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까지 두루 섭렵하며 취향이 다양해진 우리 관객들에게 시의 적절하게 제공되는 독일어권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빈뮤지컬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독일어권 뮤지컬을 주도해 온 작사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명콤비플레이어를 우리말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 더 그렇다. 미하엘 쿤체는 철학과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법학박사 출신이고 실베스터 르베이는 열다섯 살 부터 팝과 클래식을 오가며 작곡, 연주, 지휘자로 두각을 발휘한 거장으로 유럽에 앉아 그래미상과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세계적인 대중예술가들이다. 기본기가 탄탄한 실력파들의 자유로운 창작 행로인 셈이다.
그리고 뮤지컬 ‘모차르트’는 뮤지컬 마니아들에게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 암암리에 음악과 동영상이 공유되는 꿈의 블랙리스트였다.(6년 전 내 컴퓨터에 전송된 모차르트 음악을 들었을 때 음악만으로도 장면이 그려지는 역동적인 첫 감흥을 잊지 못하고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김준수란 신인배우의 티켓 파워다. 지방과 해외 원정 관람에 극장 암표상까지 진풍경을 만든 김준수효과는 한편으로 아이돌스타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의 대표 사례로 우려되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성공적인 데뷔다. 공연 개막일에 유희성연출가를 통해 인사를 나누었던 그는 무게 중심이 땅을 향해 있고 다부진 눈빛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김준수모차르트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 틈에서 첫 무대를 책임지는 길은 진정성뿐이라는 것을. 고음이 특히 매력적이고 음색에 배인 드라마틱한 감성이 장점인 김준수는 가사 전달력이 부족함에도 극에 대한 진지한 분석으로 무대를 장악하였다. 이제부터 그가 할 일은 장기 공연을 버티는 소리의 단련이다.


김준수 뿐만 아니라 한국 ‘모차르트!’의 성공에는 적절한 캐스팅이 한 몫 한다. 임태경모짜르트는 이미지, 음색과 가창력, 무대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기질까지 빈뮤지컬 ‘모차르트!’가 표현한 모차르트와 닮음 꼴이다. 평소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대해 좋아한 다기 보다 위로받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의 소리가 천부적으로 혼(soul)을 담고 있기 때문인데 천부적인 재능도 모차르트와 닮았다. 그런 그가 연기에 대한 강박에서 좀 더 자유로웠다면 훨씬 더 자연스럽고 감동적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박건형은 연기로 승부를 건 듯 했다. 때문에 가사나 상황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돋보였다.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참여와는 무관한 자유인 모차르트가 뜬금없이 민중을 대변하는 선동가로 나서는 프랑스 혁명 장면은 다소 의아한데 박건형은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억압에 천성적인 저항의식이 있는 모차르트의 충동적인 취기로 표현했다. 취했기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에 대한 원초적인 발언에 충실했던 것이다. 취중진담인 셈이다. 혁명의 중심에 서서 호연지기하는 모차르트의 이상행동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러나 박건형의 모차르트는 지나치게 가볍고 작위적이다. 습관적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동작에 몰두하는 설정은 특히 지나치다. 모차르트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왕성하며 당시 생활을 위해 다작을 한 작곡가였지 작곡이나 피아노 연주에 시달리는 심리적인 장애를 지니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모차르트의 스트레스는 음악 자체가 아니라 원하는 음악에 몰두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다.


고음처리에서 전율이 일게 하는 박은태의 가창력까지 4명의 모차르트는 서로 색깔이 명확히 다른데 그들의 장단점을 잘 갈무리한 연출의 배려와 의도가 돋보인다.
그 모차르트들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레오폴드 서범석, 아내 콘스탄체 정선아,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신영숙, 콜로레도 주교 윤형렬과 민영기, 누나 난넬 배해선, 체칠리아 베버 이경미 등이 제 역할을 완벽에 가깝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콘스탄체 역의 정선아의 유려하면서도 명확한 노래와 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채우고도 넘쳤다. 배우 정선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희열이다. 또 콜로레도주교를 선택한 뮤지컬 신예스타 윤형렬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모차르트!’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절제미가 돋보이는 상징적인 무대와 조명, 화려한 의상이 조화롭게 결합된 무대 미학이다. 단지 메커니즘의 완성이 아니라 극을 관통하는 주제를 일관성 있게 시각화한 노력이 특별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국‘모차르트!’의 성공 요인은 원작 자체다. 28인조 오케스트라로 풍부하게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는 드라마틱하고 풍성한 음악은 모차르트의 음악 없이 모차르트를 음악적으로 재창조했다.


인간의 이중성을 잘 다루는 작가 미하엘 쿤체의 극적인 설정도 탁월하다. 사회와 갈등하며 변화하는 모차르트의 자아(ego)인 볼프강과 창작의지에만 몰두하는 모차르트의 원초적인 이드(id)인 어린 아마데가 함께 무대를 종횡 무진한다. 세상에 마모되어 가는 현실적인 모차르트가 천부적인 음악에의 열정에 끝없이 몰두하는 자신의 내면과 충돌하고 화해하고 협력하는 자아의 혼돈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한가운데서 모차르트에게만 현대 청년의 상징인 레게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힌 설정도 남다르다. 그 시대에 그는 저항이고 자유였음을 상징하며 또 다른 의미로는 시대를 초월해 영원한 모차르트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착취해 자신의 체면과 집안 경제를 살리려 했고 콘스탄체는 허영과 사치에 몰두한 악처, 콜로라도대주교는 예술에는 무식한 권력자였다는 것이 알려진 역사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미하엘 쿤체는 이들 실존인물을 비롯한 등장인물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성격적인 당위성을 부여하고 자기 변론하는 노래까지 한 곡씩 배려함으로서 시종일관 이어지는 군중들의 놀라워라! 라는 감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다행이다. 하지만 모든 인물이 입체적인 성격을 부여받은 만큼 모차르트와의 극적 갈등이 밋밋하고 도식적인 함정은 있다.


35년간의 짧은 생애 동안 600여곡의 곡을 남겨 아직도 세상의 음악을 지배하고 있고 그에게는 세속의 자아가 있다는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표현대로 드라마틱한 기질의 소유자였던 모차르트를 향해 가는 길은 얼마나 여러 갈래였을까?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는 깊이 고민하고 연구했을 것이고 결국 그의 일대기를 세상과의 갈등 구조로 보여 주는 길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극 전개 또한 도식적이고 잦은 암전이 극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흠을 남겼다. 너무 많은 볼거리를 콘서트 장에서 곡마다 박수치며 본 듯하다. 그래서 결국 모차르트의 이드(id)인 아마데가 모차르트의 자아(ego)인 볼프강의 심장을 찔러 미완성의 레퀴엠에 방점을 찍는 백미의 장면마저 강렬하지 못했다. 극 전반의 연출적인 강약 조절이 요구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모차르트!’는 올해를 여는 최고 화제작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면서 향 후 독일어권 뮤지컬들이 한국으로 진출하는 물꼬를 힘살 좋게 텄다.


 


(뉴스테이지=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과 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