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의 뮤지컬프리즘3] 뮤지컬 '올 댓 재즈'

뮤지컬연출가 ‘서병구’와 ‘밥 포시’

2010-03-02     뉴스관리자


15년 전, 연극 ‘어머니’를 기획할 때 일이다.
동숭아트센터 첫 제작 공연이란 점, 개성 강한 두 극단 ‘연희단거리패’와 ‘아리랑’의 10주년 합동 공연이었으며 이윤택 작, 김명곤 연출이란 점, 당시 ‘바람은 불어도’란 히트 일일드라마의 히로인 나문희 주연이란 점 등으로 연극‘어머니’는 화제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0일간의 공연 내내 전석 매진이란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때, 기획자로서 나의 도전 의지는 작품뿐만 아니라 포장에 까지도 뻗쳤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극 아트포스터를 만들겠다고 지금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구본창작가와 연극 ‘어머니’의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그 포스터도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배우 나문희와 일명 똑순이 김민희가 빛바랜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그 포스터에 얽힌 또 하나의 화제가 있다. 포스터 앞에서 한 무리의 주부 관객들이 주고받던 대화다. “여기 연출에 김명곤이라고 쓰여 있는데 김명곤씨는 왜 등장하지 않았지?!”. 그랬다. 관객들에게 연출가 김명곤은 서편제 배우로 더 알려져 있었고 관객들은 연출과 출연이 어떻게 다른지 잘 알지 못하고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연과 관객의 관계, 기획자의 의식과 역할에 대해서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듯 깨우친 일이었다.
 ‘연출은 연기 ·장치 ·의상 ·분장 ·소도구 ·조명 ·음악 ·효과 등의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공연의 총체적인 효과를 창출하고 책임지는 활동이고 출연은 공연에서 연기하기 위하여 무대에 서는 활동’-사전적 의미다. 쉽게 말하면 연출은 연기하는 출연자(배우)를 포함해 공연의 여러 요소를 활용하여 공연을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연출이 누구냐에 따라서 공연의 성격과 미학이 결정된다.
하지만 최근 공연도 산업화되면서 공연의 주체가 창작자에서 프로덕션 또는 프로듀서로 바뀌어 프로듀서의 구상과 방향에 따라 연출가가 고용되고 작품 결과도 결정되는 것이 새로운 사회풍토가 되고 있다. 따라서 연출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특히, 음악을 비롯한 여러 전문적인 요소들의 스케일이 종합되는 뮤지컬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세태 변화는 언제나 두 얼굴이다. 최근 원 콘텐츠의 브랜드에 의존하거나 유명스타를 내세워 공연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흥행에 성공한 일부 뮤지컬 공연은 그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공연은 대체로 무대 문법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노래와 동선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한 배우 한명으로 인해 공연의 균형감과 밀도가 떨어진다. 연출이 제 구실을 못한 경우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올 댓 재즈’는 인상적인 뮤지컬이다.
창작뮤지컬의 1세대 프로듀서로 작품에 깊이 관여하는 스타일인 김용현프로듀서와 1세대 뮤지컬 안무가 서병구가 만났는데 그들의 해후가 행복해 보이는 공연이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뮤지컬안무가인 서병구는 그동안 화려한 대형 뮤지컬의 안무를 주문 제작하듯 쏟아내 왔고 그래서인지 안타깝게도 그의 안무는 언제부턴가 신선하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를 뮤지컬연출가로 내세웠고 연출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한을 허락했다. 그리고 서병구는 그 선택이 탁월한 안목과 결단이 되도록 책임졌다.
원래 시각적인 감각과 드라마 분석력이 뛰어난 안무가인 서병구는 뮤지컬연출가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했다. 안무가는 음악을 육체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 역할이니 더더욱 그렇다.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는 한국 뮤지컬 분야의 두 거장이 초심으로 돌아간 듯, 발가벗고 만난 듯 군더더기 없고 소박했다. 시공간의 전환을 패널 대도구 몇 개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소극장에서 조명, 의상, 음악 전환까지 통일성 있는 무대 미학으로 녹여 낸 서병구연출가의 창의성이 돋보였다. 깔끔하고 세련된 절제미와 노련미도 한몫했다.
뮤지컬 전문 연출가가 극히 부족한데다 프로듀서 중심의 제작 풍토에서 연출가의 역할이 점점 더 미비해 지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현실에서 연출가 서병구의 출현(?)은 고무적이다.
뮤지컬연출가는 음악, 안무를 비롯해 무대, 조명, 음향 등 전문적인 무대 메커니즘을 체화한 존재여야 하고 음악적인 계산을 리듬감 있게 시각화해야 하는 종합예술가다. 그래서 해외의 경우, 안무가가 뮤지컬연출가로 변신하거나 병행하는 경우들이 많다.
영화 ‘올 댓 재즈’의 감독 ‘밥 포시’는 그런 연출가로서 교과서이고 신화다.
그는 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창조했고 음악을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게 했다. 밥 포시스타일의 안무는 뮤지컬뿐만 아니라 춤 전 장르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는 안무만으로 장르를 만든 셈이다. 그가 연출한 뮤지컬과 영화인 ‘카바레’‘시카고’‘피핀’‘올댓재즈’ 등은 토니상과 아카데미상을 장악했다. 비틀리고 원초적인 관능의 춤을 기반으로 밥 포시라는 새로운 세계를 무대 위에 세운 것이다. 연출가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의 연출가 서병구는 밥 포시를 닮고 싶었을까? ‘밥 포시’ 뮤지컬의 곡이 단 한곡 사용되고 밥 포시 안무를 차용하고 재즈음악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 외에는 원작 ‘올 댓 재즈’와 전혀 닮지 않은 한국적 상황의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의 제목이 ‘올 댓 재즈’인 이유는 무엇일까? 

안무가 출신 연출가 서병구의 깔끔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가 기획적인 면에서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발목을 붙잡힌 듯 보이는 것은 바로 제목 때문이다.
‘밥 포시’를 이해하되 ’밥 포시‘로부터 자유로웠던 서병구 연출가의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가 독보적인 창작뮤지컬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고로 좌절된 한 한국인 뮤지컬안무가의 꿈과 사랑이 회복되는 내용에 맞는 새로운 제목의 뮤지컬로 거듭나는 산고가 필요해 보인다.
연출과 출연을 굳이 구분할 필요 없이 공연을 즐길 권리를 가진 관객들에게 행여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와 원작 ‘올 댓 재즈’를 구분하는 수고를 짐 지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뉴스테이지=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과 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