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 착수금 반환액수는 '변호사 마음'에 달렸다

2010-03-05     임민희 기자


<법정변론 경연대회 현장.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없음>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채무, 이혼, 재산상속 등 개인간 법적다툼이 증가하면서 많은 이들이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단 착수금을 지불할 경우 소송이 무산돼도 환불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여서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수임료 및 사건진행비 명목으로 선지불하는 착수금은 법적으로 환불을 받을 수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변호사들이 불공정 약관 조항, 즉 '어떤 사유로도 착수금 반환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계약서를 사용하고 있고 환불액수도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착수금 받고 한달간 딴 짓..돈만 떼여"

서울에 사는 김 모(여) 씨는 이혼 후 전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된 분양권아파트에 대해 법원에 '분양권가처분금지결정'을 낸 사실을 알고 지난 1월말 A법무법인을 찾아갔다. 당일 B변호사와 상담 후 계약서를 체결, 착수금으로 550만원을 지불했다.  

얼마 후 변호사 측은 김 씨에게 '제소명령' 결정이 나왔다며 이를 진행하겠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제소명령이란 가압류 또는 가처분명령을 내린 법원이 채권자에 대해 본안소송을 제기하라고 명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한 달이 다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다가 2월 말 전남편의 주소를 잘못 알아 제소명령장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며 주소를 다시 알려 달라고 했다. 상담받을 당시 자신의 신상정보는 물론 전 남편의 변경된 주소를 알려줬던 김씨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김 씨는 소송보다는 합의를 보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에 전남편과 합의해 가처분금지를 풀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후 변호사 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착수금 환불을 요청했다. 그러나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끌었다.

김 씨가 체결한 변호사 사건위임계약서상에는 '착수금은 소의 취하, 상소의 취하, 화해, 당사자의 사망, 해임, 위임해제 기타 어떠한 사유가 발생하여도 그 반환 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이 약관은 불공정 조항으로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정, 삭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김 씨가 수차례 항의한 끝에 변호사 측은 상담비 및 사건 진행비라며 50만원을 제외한 500만원만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김 씨는 "담당변호사는  15분정도 얼굴을 본 것이 전부고 법무법인 담담자도 진행상황을 문의할 때마다 기다리라는 말만할 뿐이었다. 사건을 성실히 처리하기보다는 오히려 시간만 지연시켰으면서도 환불에 애를 먹였다"고 그동안의 고충을 토로했다.

착수금 환불 법적 보장, 환불액수는 규정없어

한국소비자원 서비스팀 관계자는 "계약서 체결내용과 변호사의 사무처리 및 노력 여부 등을 따져봐야 반환액의 타당성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며 "착수금 반환은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는 부분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무효라고 시정권고를 내렸기 때문에 타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쌍방의 합의에 따라 법적으로 환불해 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5년 변호사 사건위임계약서상 불공정약관조항을 수정, 삭제하도록 시정권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미 지급한 착수금에 대해 타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일절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소비자에게 부당한 조항이라는 지적.

공정거래위 약관심사과 조홍선 팀장은 "불공정 계약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심사를 거쳐 약관조항을 고치도록 시정권고를 내린다"면서도 "아직도 불공정약관을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례가 많지만 모든 변호사들에게 이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착수금 환불은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환불액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어 분쟁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착수금 환불에 대한 규정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변호사와 의뢰인이 합의하에 환불액을 정하되 의뢰인이 환불액수가 불합리하다고 여길 경우 '민사소액재판'을 통해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변호사와 상담시 상담비를 주는 게 맞는데 사건을 수임할 경우 착수금 안에 상담비가 포함돼 있다.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많이 받을 수도 적게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담비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