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직원 상납금 등쌀에 협력업체 '죽을 맛'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유성용 기자] 대기업 직원들이 협력업체로부터 향응 및 금품을 상납 받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영업비 명목으로 하도급 업체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상납금으로 징수해 가고 있는 것. 중소 협력업체들은 "대기업들이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으로 납품대금을 후려치고 있는데 직원들 마저 영업비 명목으로 상납금을 요구해 파산 지경"이라며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서 10여년간 대기업 L사의 바닥장식재 공사대행업을 해온 이 모(남.53세)씨. 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에 영업비 제공내역을 기입한 장부를 제공했다.
그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상납 액수가 무려 8억6천여만원에 달한다. 향응 및 골프 접대까지 더하면 실제 상납금액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 씨는 "지금까지 L사로부터 받아온 공사대금은 100억원 가량이다. 현장 인부들의 임금과 실비를 제외하면 5%, 약 5~6억원의 이익이 남는데 영업부 직원에게 상납한 돈만도 10억이 훌쩍 넘을 지경이니 회사가 제대로 버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공개한 장부에는 영업부 직원들에게 한 달에 적게는 2~3번, 많게는 4~5번까지 영업비를 제공했다. 그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현장이나 사무실을 찾아와 받아갔다. 1회 제공 금액은 500만원 단위가 가장 많았다. 적게는 100만~200만원,많게는 1천만원에서 1천500만원에 달했다.
물론 돈은 100% 현금으로 건네졌다. 자칫 계좌를 통해 받았을 경우 내부 감사 등으로 적발될 우려가 있기 때문. 이 씨가 공개한 장부는 지금까지 L사와 거래를 해오며 작성해왔던 일계표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영업비 왜 주나?
이에 대해 이 씨는 "영업비 제공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장 다음 현장에서부터 공사는 다른 경쟁업체 차지가 된다. 공사를 따내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업체를 두는 것이 본래 품질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지만 대기업의 횡포를 겪다보니 마치 협력업체로부터 향응 및 영업비 징수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 처럼 여겨진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는 "한 번은 계속되는 적자로 영업비 요구에 불응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바로 수천만원의 공사대금 지급이 아무런 이유 없이 미뤄졌다.영업부 직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협력업체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명확한 '갑을' 관계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적자행진 속에서도 협력업체는 그들의 배를 채워줘야 한다"며 탄식했다.
신문고 제도는 그림의 떡
L사는 직원들의 이같은 비리를 막기위해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더 커서 이용할 수없는 실정이라고 이씨는 털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문고에 영업부 직원의 비리를 투고할 경우 감사를 통해 해당 직원이 해고돼 당장 눈앞의 영업비는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업부의 다른 직원들이 투고한 협력업체를 '찍기' 때문에 더이상 버틸 수없게 된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협력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비 등 향응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현장 인부들의 임금이라도 제때 주고자하는 고육지책이란 것.
이 씨는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갑을' 관계가 지속되는 한 이 같은 모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4년 전에 비해 인부들의 임금은 10%나 올랐는데, 대기업은 환율에 따른 원자재값 상승 운운하며 공사비를 삭감하기 일쑤다. 4년전 1만3천500원이던 공사 대금이 요즘은 1만1천300원까지 떨어진 상태"라며 울분을 토했다.
해당 직원들 결국 해고, 협력사는 '거래종료'
그러나 이 같은 영업부 직원들의 비리는 부도위기에 직면한 한 협력업체가 투서하면서 드러났다. L사는 대대적인 감사를 벌여 투서를 넣은 회사는는 물론 이 씨 회사에도 '거래종료'를 통보했다. 두 회사 모두 부도 위기에 몰리는 비극으로 끝났다. L사 직원들 역시 해고됐다.
L사 관계자는 "지난해 해당 직원이 자재를 불법 유통시킨 혐의로 감사를 받았고 사실로 드러나 해고했다"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