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소비자는 리콜하는 기업을 믿는다

2010-03-17     뉴스관리자

자동차 없는 미국생활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출퇴근뿐 아니라 식당이나 마트, 심지어 미용실 갈 때도 자동차를 이용한다. 아이들도 16세가 되면 운전을 하며, 입학이나 결혼 선물의 일 순위는 단연 자동차이다.

그만큼 자동차가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미국인들이 자동차의 품질이나 디자인 그리고 안전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2000년 초 미국 체류시 도요타 캠리를 탔다. 출고된 지 7년이나 지난 중고차이지만 한국에서 몰던 신차보다 성능이 우수했다. 귀국 시에는 구입가격 그대로 되팔 수 있었다. 그만큼 도요타는 품질이나 안전성에서 신뢰받던 차종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도요타의 결함과 리콜에 관한 뉴스가 이제 식상한 감도 없지 않다. 세계인들의 선망이던 렉서스에 이어 주력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결함 리콜 결정이 나오더니, 이제는 도요타의 저가 브랜드인 코롤라의 핸들결함 리콜가능성 소식까지 들린다. 뛰어난 품질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던 회사의 수십 년간 지켜온 명성과 소비자신뢰가 한꺼번에 추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실 도요타는 전에도 리콜지연 문제로 곤욕을 겪은 적이 있다. 특히 일본 사정당국의 조사결과 당시 실무책임자 뿐 아니라 회사의 고위간부까지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8년씩이나 숨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회사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었다.

도요타의 사례는 지난 2000년대 초 발생했던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결함은폐사건과 유사한 면이 있다. 당시 미쓰비시는 막대한 리콜비용과 회사 이미지 훼손으로 인한 손실을 염려해서 결함사실을 숨겼지만, 그 결과는 엄청났다.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부도 위기까지 몰렸고, 아직도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진국 기업들은 문제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자발적으로 리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벤쓰나 포드와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결함 있는 부품을 리콜한다는 홍보까지 하고 있다.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소비자제품의 리콜도 선진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소비자도 자발적으로 리콜을 하는 기업에 호감을 갖는다. 수년전 LG의 전기압력밥솥이 내솥결함으로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초기에는 대처에 다소 미온적이던 회사가 광고를 통해 포상금까지 걸면서 리콜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이자. 소비자들은 LG전자에 좋은 점수를 줬다.


제때 리콜 하는 기업과 결함을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발각되는 기업 중 어느 쪽을 소비자가 신뢰할지는 이번 도요타 사태를 보더라도 자명하다. 은폐된 체로 넘어갈 수 있다면 좋지만 진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알려지는 것이 세상 이치다. 특히나,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더욱 그렇다.

필자가 수행한 조사에서도 기업들은 리콜로 인해 소비자 신뢰가 하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반대로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리콜하는 기업에 더 큰 호감을 나타냈다.


소비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기업이 소비자의 신뢰와 사랑을 얻어 경쟁력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때 조치하는 것이 기업에게 최선의 방책이다. 도요타의 경우도 뒷북 리콜로 막대한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신뢰회복에 득이 될 것이다. 회사의 확실한 리콜조치가 진행된다면 여론의 뭇매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쌓인 품질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점차 회복될 것이다.

리콜제도는 잘 정비되어 있지만, 실제로 결함 제품의 리콜에 소극적인 감이 있는 국내 기업들도 이번 도요타의 경우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제품의 품질향상과 더불어 안전상 문제 있는 제품의 신속한 리콜조치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이종인/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 건국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