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금융권서 외면 받는 서민 소비자
요즘의 생활뉴스 중의 하나는 민생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1년 전에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우리나라의 서민경제는 여전히 바닥이다.
통계상의 실업률과는 달리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지난해 9월부터 매매를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동네 부동산중개업자의 하소연만으로도 체감경기를 짐작케 한다.
사람들이 겪는 경기침체로 인한 어려움은 서민금융의 문제에 그대로 묻어난다. 실질소득의 감소로 저축은 생각지도 못하며, 부족한 생활자금을 빚으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말 그대로 신용사회여서,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경우에도 얼마간의 채무를 안고 살아간다. 또한 경제구조적으로도 신용카드의 사용이나 보험 가입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소비자가 신용소비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표현을 달리하면 구조적인 채무자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저소득층이거나 일정한 소득이 없는 소비자 그리고 영세자영업자와 같은 이른바 서민층은 특히 금융소외자의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저금리정책과 금융기관의 지속적인 가계·중소기업대출 증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등의 이유로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불리한 조건으로도 사채와 같은 사금융을 이용하게 되고, 초고리의 이자 부담에 따른 상환불능이나 불법채권추심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사례가 2009년 상반기 중 전년동기 대비 27.7%나 증가되었고, 수사기관에 통보된 건수는 무려 300%이상 증가되었다고 한다.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집과 같은 실물자산이 있어도 자산가치의 디플레로 처분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비중을 보면 은행예금보다는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 비중이 높아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충격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며,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높아 금리상승과 같은 여건변화에 취약한 상태이다.
경기침체기에는 이와 같이 실물자산이나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경우에도 금융이나 신용상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물론, 이처럼 어려운 민생과 서민금융 여건은 국제적인 경기 회복과 그에 따른 국내경제의 활성화가 이뤄지면 어느 정도는 일시에 좋아질 수도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 실질소득이 증가하고, 실물자산의 유동성이 개선된다면 부채상환능력도 개선되어 생활여건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에는 이러한 긍정적인 대외 환경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민생우선의 정책기조 아래 서민금융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각도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 같다. 미소금융 등을 통해 서민에 대한 신용지원을 강화할 뿐 아니라, 고리사채의 횡행과 과도한 금리요구와 같은 서민가계에 부담지우는 탈법적 행태를 막고 사금융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정비에 힘쓰겠다고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정부와 금융감독기관에서 당연히 추진해야할 조치들이며 신속할수록 좋다. 대부분의 규제가 그렇듯이 타이밍이 중요하며, 시기를 놓친 규제조치는 없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현행 이자제한법상 금리수준과 대부업법상의 제한금리의 적정성문제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기에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경기침체기 서민금융을 둘러싼 이러한 여건개선의 필요성은 정책당국만의 몫은 아니다.
정책의 결과나 제도의 운용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므로 금융서비스의 제공자나 이용자는 자신들의 몫을 다해야 한다.
제도권 금융기관이나 대부업 종사자 등 금융서비스 제공자는 법과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고, 그 이용자인 금융소비자나 단체 역시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관련 기관에서는 서민금융서비스에 관한 이용자의 의식이라든지 시장에서의 피해실태조사 등을 통해 피부에 와 닫는 정책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종인/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 건국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