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회사가 산 사람 잡네!
납입금 떼먹고 잠적, 터무니 없는 위약금 청구..정부 뒤늦은 대책
[소비자가만드는 신문=차정원 기자] 국내 최대 상조업체인 보람상조가 경영진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상조업계 전체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상조회사 가입자들이 250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상조업계가 고질적인 내부비리와 부실경영으로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상조회사에 가입했다가 업체가 폐업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실한 서비스로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05년 219건에 불과했던 상조회사 관련 불만상담은 지난해 2천446건으로 불과 4년만에 10배가 넘게 증가했다. 특히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상담건수가 연평균 85%씩 증가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다.
피해구제 건수는 2005년 44건에서 2009년 374건으로 늘었지만, 구제율은 20%에서 15%로 되레 낮아졌다. 피해가 늘고 있는데 비해, 소비자들이 구제를 받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폐업 후 잠적 일쑤.. “환급은커녕 서비스도 못받아”
울산시 성안동의 김정희(여.59세)씨는 지난 2001년 지인의 권유로 J상조사에 가입하고 월 2만5천원씩 60회를 완납했다. 지난해 경제적 사정으로 납입금 환급을 요청하려 했지만 업체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상품 가입을 권유한 지인을 통해 2008년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동안 낸 납입금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처럼 영세한 상조업체들이 납입금을 받은 후 아무런 공지없이 폐업하고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나마 업체가 '상조이행보증'에라도 가입했다면 보증회사가 다른 업체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지만 그 경우에도 납입금 환급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업체가 고의적으로 증발한 경우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상조회사의 줄폐업은 구조적인 문제라 그 심각성이 더 하다. 지난 2003년 72곳에 불과하던 상조업체는 2008년 4배에 가까운 281곳으로 늘어났다. 우후죽순 늘어난 업체들은 다단계 영업과 과장광고로 회원유치에 열을 올렸지만 수익구조가 나빠지는 바람에 많은 업체가 영업을 중지하거나 도산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비단 영세업체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100억원 이상인 대형 상조사 8곳 중 6개사가 심각한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었다. 만약 이들 상조사에 가입한 고객들이 일시에 환급금을 요구하면 지급할 여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완납시 환급, “하늘의 별 따기”
알고보니 지난 2001년 업체가 영업을 잠시 중단하며 해당 상조 상품을 다른 업체에 하청으로 맡긴 것. 하지만 하청을 받은 업체도 자체 규약상 금전으로는 상환하지 않는다며 환급을 거부했다.
부산시 전포동에 사는 최수진(여.28세)씨는 2006년 어머니 앞으로 부산 소재의 H상조 회사의 만기시 납입금을 돌려주는 적금형 상조상품에 가입했다. 월 납입금 5만원씩 36개월을 내면 만기시 180만원을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지난해 6월 만기가 다가와 업체에 환급을 요구하니 회사 재정난이 심해 돈으로는 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최 씨는 약속 불이행도 문제지만 180만원의 가치도 못하는 상조 서비스 수준에도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처럼 만기 해지시 납입금을 돌려받기 어렵다는 점은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다.
2007년 제정된 현행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에 따르면 회원의 사정으로 해지 시 업체는 납입금에서 모집수당. 기타 관리비 등을 공제한 산식에 따라 해약환급금을 10일 이내에 환급해야 한다. 그러나 표준약관보다 불리한 자체 약관을 사용하고 있는 업체가 많아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해지? 누구 맘대로"..터무니 없는 위약금 부담
서울시 길동의 박시무(남.35세)씨는 고령의 아버지 앞으로 지난 2008년 2월 서울 소재의 U상조회사에 방문판매 방식으로 가입하고 지난해 12월까지 월 3만원씩 21회를 납부했다. 12월 중순 언론에서 상조회사들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 상조업체에 대한 불신감이 든 박 씨가 해약을 요구하자 업체는 자체 약관에 따라 납입금의 15%만 돌려주겠다고 했다.
박 씨의 경우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중재로 기준에 따른 환급금을 지급 받을 수 있었지만 상다수의 업체가 아직도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을 버젓이 강요하고 있다.
김포시 풍무동의 김미경(여.28세)씨는 지난해 4월 현관문에 무료영화상영권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정된 행사일에 영화관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대신 상조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는 홍보영상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J상조회사 직원들이 상품가입을 권유했다.
결국 부모님 앞으로 상품을 가입한 김 씨는 지난해 7월까지 월 3만원씩 2구좌(총 6만원)에 3회 납입했다. 7월 중순 경제적인 사정으로 해약을 요청했지만 처리가 지연돼 10월에서야 해약했다. 해약 처리가 지연된 건 업체 측 과실인데도 환불 약관에 따라 마지막 회분 금액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소비자의 귀책사유로 상조상품 중도 해지시 기한. 금액 등에 따라 달라지는 해약환급금 계산식에 의해 환급금이 책정된다. 이에 따르면 만기 6년, 월 3만원 납부 상품 기준으로 11회차 납부부터 납입금의 5.8%환불이 가능해지고 회차가 올라갈수록 환급률이 상승해 최종 60회차시 81%가 상한선이다.
하지만 앞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상조회사들은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위약금을 물리는 수법으로 회원 탈퇴를 막고 있다.
▶ 9월 법률 개정안 시행, “고질병 뿌리 뽑을까?”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월 19일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공포해 ▲자본금 3억원 이상 업체만 영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상조업 등록제’ ▲ 납입금의 50%를 따로 예치하도록 하는 ‘고객불입금 예치 보전제’ ▲ 상조업체의 재무상태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정보공개제도’ 등을 신설했다.
업계에 진입장벽이 생기고 부실경영에 따른 도산시에도 납입금의 50%를 보장 받을 수 있게되므로 영세 업체들에 의한 소비자 피해는 감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가입 전 소비자가 업체의 재무상태를 확인 할 수 있게 돼 고질적인 재정악화에 따른 환급 거부등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청약철회·계약해제시 대금환급을 의무화하는 소비자 보호장치 마련하고 행정적으로 공정위 및 지지체가 상조업체의 법위반 행위에 대해 조사 및 시정 조치를 취하도록 바뀐다.
개정법은 공포 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9월부터 시행되며 법 시행 이전 가입자들도 신설 규정을 적용 받을 수 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상조업계가 '서로 돕는다'(相助)는 본연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