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서명없는 보험 불안.."보험금 나올까?"
대법원 '무효'판결 뒤 불안감 확산..보험사 "확인서 믿으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차정원 기자] 최근 보험을 둘러싼 민원이 증가하면서 보험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필서명을 하지 않은 보험의 효력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곧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인천시 산곡3동의 김 모(남.31세)씨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11일 M보험사의 유아보험에 가입했다.
김 씨는 직장 상사가 잘 아는 설계사가 있다고 해서 그를 통해 보험에 가입했다. 자신의 정보를 상사를 통해 설계사에게 알려주는 방식으로 계약한 것이다. 설계사를 만나거나 통화를 한 적이 없고 계약서에 자필서명도 하지 않았다.
월 3만 3천원의 보험료를 3개월째 납입한 지난 3월 중순께 김 씨는 언론 보도를 통해 자필서명을 하지 않은 보험은 무효라는 소식을 접했다.
불안해진 김 씨가 업체에 문의를 하자 "추가로 자필 서명을 보완하면 문제 될 게 없다"면서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줬다.
그러나 자필 보완은 법적인 효력이 없어 추후 보험금 지급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 씨는 정상적으로 계약을 하기 위해 보험사에 기존 보험의 해약과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는 "품질보증기간이 지났으므로 환불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 씨는 보험사와의 마찰 끝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중재를 통해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 자필 서명 없는 보험 계약은 전부 무효는 아냐
사실 이같은 일은 김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자필서명이 없는 생명보험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이 이같은 판결을 내린 이유는 보험 상품이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계약자가 피보험자 몰래 보험에 가입한 뒤 피보험자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을 적용하면 보험사는 자필서명이 없는 보험에 대해서는 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만 돌려주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사고가 나더라도 계약자는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규정은 사망을 담보로 한 보험중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사망을 담보로 하지 않는 보험 상품이나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은 경우에는 자필서명이 없어도 보험 계약이 유지 될 수 있다.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동일한 보험계약에서 계약자의 자필서명이 없다면 이는 자동으로 '불완전판매'로 간주되어 보험회사의 과실이 된다. 이런 경우 계약자는 품질보증기간인 3개월 이내 금전적 손해 없이 계약을 취소 하거나 자필 서명 보완 등 사후보완을 통해 계약을 유지 할 수 있다.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도 정상적으로 지급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자필 서명을 하지 않고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추후 보완을 통해 계약을 유지 할 수 있다"며 "이때 보험사에서 문서상으로 이 부분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제공하므로 추후 보험금 지급시 문제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 '확인서' 받으면 일단 안심?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김 씨의 경우와 같은 보험 가입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내 놓았다. 자필 서명을 하지않은 가입자들에게 보험사에서 `자필확인서` 또는 `보험보장확인서`를 발급하도록 지시한 것.
이미 체결한 보험계약 중 자필 서명이 미비할 경우 자필확인서와 보험보장확인서를 발급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의지를 문서화 하도록 해 계약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 같은 지시가 나오기 전부터 확인서를 발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조취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형 생보사의 관계자는 "지난달 판결은 사례가 특수해서 대법원이 나서는 바람에 언론에 다뤄진 것일 뿐"이라며 "자필서명에 관한 문제는 90년대 초 부터 이슈화됐고 그 당시부터 확인서를 발급해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과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들은 자필확인서와 보험보장확인서 등을 본사나 지점 방문을 통해 작성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씨와 같은 경우가 여전히 발생고 있는 것처럼 소비자들의 마음은 편치않다.
금감원 측은 "확인서 발행은 곧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므로 보험사들이 이를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확인서 자체가 보험의 효력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란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최근 민원처리를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면서 보험사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것도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분쟁은 모두 2만8988건으로 2008년도 7963건에 비해 37.9%나 증가했다. 이중 생명보험이 1만1193건으로 전체의 38.6%를 차지했고, 손해보험이 1만349건으로 35.7%였다.
또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례도 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지난해 보험회사가 소비자를 상대로 1천518건의 소송을 지급하는 등 보험회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자필서명 없는 보험에 대한 근원적 대책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