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in] 연극 ‘레인맨’

나의 ‘레인맨’은 누구인가

2010-05-19     뉴스관리자


순수한 표정의 환한 미소가 어울리는 한 사내가 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을까. 겉옷 주머니에는 연필과 볼펜이 한가득 꽂혀있고 어쩔 줄 모르는 손은 어색하기만 하다. 30년 동안 병원에 지내면서 그가 했던 일은 정해진 시간에 의사와 상담을 하고 정해진 요일의 메뉴에 맞는 식사를 하고 뉴스를 보고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것이다. 그는 자폐증 환자이며 암기력이 뛰어난 서번트 증후군 레이먼 바비트다.


레이먼은 자신이 만든 세상에 속해 있다. 누군가 말을 걸고 다가와도 자신의 언어로만 표현한다. 그가 속해 있는 곳은 어쩌면 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성지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외워야 하고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레이먼은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에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되길 원했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지만 할 수 없는 것들을 레이먼은 하고 있다.


유산상속을 목적으로 자신을 찾은 동생 찰리 바비트. 형제는 없다고 생각했던 그와 마주친 레이먼은 찰리 바비트라는 이름을 듣고 찰리가 동생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둘의 첫 만남은 너무 어색했다. 찰리는 세계인구가 몇 명인지, 센트럴시티의 강수량이 얼마인지를 줄줄 외며 숫자에 집착하는 레이먼을 무작정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찰리는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동안 이상하게 훌륭한 기억력을 가진 레이먼과 대화를 한다. 아기였던 찰리를 기억하는 레이먼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유모에 대한 기억을 찰리와 공유한다. 하지만 욕조에 틀어진 뜨거운 물을 보자 아기 찰리를 아프게 했던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어릴 때 팔에 난 화상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믿었던 찰리에게 끔찍한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그 상처가 사랑을 많이 받은 흔적으로 되새겨진다.


며칠간의 짧은 여행을 통해 레이먼과 찰리는 교감을 하고 마음의 거리를 좁혀간다. 레이먼은 암기력으로 찰리를 기쁘게 하고 찰리는 레이먼의 일상에 함께 하는 등 서로의 방식으로 조금씩 다가간다. 처음엔 만지지도 못하게 했던 레이먼은 찰리에게 춤을 배우고 그렇게 그들은 가족의 애정을 느낀다.


찰리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일지 모른다.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 사랑을 가족에게 주고받으며 그 기쁨을 느끼길 원하고 바랐을 것이다. 너무나 답답하고 탁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신선한 공기와 한줄기의 빛과 같은 존재. 레이먼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찰리에게 숨을 틔어주는 공간이 되어주기를 원한건지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레이먼은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단절시켜 외부로부터의 압박과 고난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레이먼과 찰리는 서로를 만나 아픈 곳을 보듬고 안아주고 있다. 어쩌면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은 그들의 어울림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와 닮아 있다.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다가서길 원하는 우리와 같이.


레이먼은 로스엔젤레스 도착 후 찰리에게 수잔나와 셋이 같이 살 것을 제안 받지만 자신의 존재가 둘에게 짐이 될까 병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릴 적 찰리의 상상 속 친구였던 레인맨은 형 레이먼의 이름은 잘못 부르면서 생겨났다. 이제야 비로소 레인맨이 현실에서 찰리를 지켜주고 싶은 레이먼으로 돌아왔다. 짧은 여행이 서로를 알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깊은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더욱 단단한 사랑 안에 한 가족으로 변한다.


뉴스테이지 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