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루시드 드림’
“내 생에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소”
2010년 1월 초연당시, 색다른 소재와 신선함으로 관객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연극 ‘루시드 드림’이 앙코르 공연 중이다. 이 작품은 한 달여 동안의 공연기간 내 전석 매진의 신화를 기록하며 창작 희곡 활성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 치밀해진 구성과 연출로 관객을 찾아가는 연극 ‘루시드 드림’은 내달 6일까지 정보소극장에서 관객을 찾아간다.
무대 위의 한 남자. 그의 이름은 최현석. 상류층의 이혼, 간통, 재벌 2세들의 성폭행 같은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다. 어느 날 그에게 사망한 선배 김선규의 미망인이 책 한권을 들고 찾아왔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은 대학선배인 그에게 선물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선물 했던 그 책에서 김선규가 남긴 듯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이 모두 선배 김선규가 변호를 맡았던 연쇄살인범의 이름으로 바뀌었던 것. 무언가에 이끌려 호기심을 느낀 변호사 최현석. 연쇄살인범 이동원의 변호를 자청한다. 이동원과 처음 만난 ‘접견실’, 둘 사이에 왠지 모를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재판까지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그 안에 이동원을 심신미약자로 만들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살인 동기를 묻는다. 왜, 13명을 연쇄적으로 죽였는지. 그러나 “난 내 운명에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하는 이동원. 내 운명의 살인? 이게 무슨 말인가. 최현석은 이동원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최현석과 이동원은 내면세계에서 놀라운 일체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각몽에 빠진다. 자각몽(自覺夢)이란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현상이다.
자각몽에 빠진 최현석은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여인(마담)을 떠올리고 그녀를 죽이고 싶은 내면과 더불어 실제 선배의 미망인을 겁탈해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이동원은 존재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회피하길 원한다. 그러나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변호사 최현석은 타인이 아닌 내안의 또 다른 나로 인해서 점점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감출 수 없는 ‘나’와 숨길 수밖에 없는 내면의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현실에 나는 없다.
연극 ‘루시드 드림’은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무대에 담아내며 인간의 본능과 이성, 선과 악, 이중적 자아, 상상과 현실 등 대비적 개념들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무대는 주인공의 머릿속이라고 설정된 ‘생각의 방’과 현재 시점에서 사건이 이뤄지는 ‘접견실’, 기억과 현실이 혼재하는 ‘침실’, 극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는 ‘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그 안에서 변호사 최현석과 연쇄 살인범 이동원, 그리고 각 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하며 조명과 음악은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주는데 한 몫을 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진실을 되짚게 한 연극 ‘루시드 드림’은 스스로 믿고 있는 선과 악 사이를 좁혀내고 인간 본질을 향해 더 깊은 한발자국을 내딛게 한다.
뉴스테이지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