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임신중절 어디까지 허용할까?"
의료계가 제한적으로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허용근거를 논의하고 나섰다.
지난 21일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하고 대한산부인과학회 주관으로 열린 '모자보건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의학적 사유에 의한 임신중절 허용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산부인과학회가 제시한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의 허용한계'를 임신 자체로 인한 합병증이나, 내·외과적 및 정신과적 동반질환으로 인해 모체의 생명 또는 건강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거나 초래할 위험이 현저한 경우로 한정했다.
또 선천성 이상은 그 원인을 불문하고 배아 혹은 태아에게 선천성 기형 또는 변형이 있거나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 가운데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따라 출생 후 생존이 심히 어렵다고 판단된 경우로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 절차와 기준으로는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차의견을 구할 것 ▲2차의견을 낼 수 있는 자는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인증하는 의료기관의 산부인과 전문의로 할 것 ▲무뇌아 등 진단이 명확하고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경우 진료상 증거자료를 보존하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단독으로 결정 가능 등이 제시됐다.
이밖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부분을 '배아 혹은 태아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또는 '출생 이후 사실상 사망할 우려가 크거나 생존이 심히 곤란한 경우 임신 주수에 관계없이 진단되는 시기에 중절수술을 행할 수 있다'로 변경하는 2안이 나왔다.
특히 산부인과학회 측은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을 결정하기 위해 반드시 2차 의견을 구해야 하며, 인공임신중절 시행에 대한 연례보고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신종철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부회장은 “임신 24주가 지난다는 것은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를 지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인공임신중절이 아니라 조기분만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학적 사유에 의한 조기분만은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 다른 영역이므로 굳이 모자보건법 시행령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전종관 대한의학유전학회 산전진단위원장은 “현행 모자보건법이 반생명적인 조항을 가지고 있다”면서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에게선 부모 한쪽이 낭성섬유증이더라도 태아에서 낭성섬유증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운데, 유산을 해도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아의 질병 유무가 아니라 부모가 질병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문일 대한산부인과학회 정보위원장은 “WHO에서 규정한 건강의 정의를 구체화해 ‘모체의 생명 또는 건강’을 ‘모체의 생명 또는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까지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의협과 산부인과학회는 이번 토론회에 이어 오는 7월5일 ‘사회경제적인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 허용’에 관해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