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의 ‘공짜 여행’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영인 주필]봉이 김선달이 모처럼 '방콕'을 좀 해봤더니 속이 못마땅해졌다. 또 한바탕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길 떠날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바가지를 숨가쁘게 긁어댔다.
"어디 가? 서울 가? 돈도 없이? 누구를 골탕먹이려고?"
김선달은 무뚝뚝하게 바가지를 막았다.
"돈은 필요 없어!"
그러면서 소와 말에게 먹이는 여물을 썰 때 쓰는 작두의 고두쇠를 챙겼다. 고두쇠는 작두 머리에 가로 끼우는 꼬부라진 쇠꼬챙이다.
옛날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사나운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 등을 지니고 다니면 안전하다고 해서, 쇠꼬챙이를 이빨 모양으로 만들어서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김선달은 돈도 없이 고두쇠 하나만 달랑 허리춤에 차고 집을 나선 것이다.
날이 저물 무렵, 김선달은 어떤 주막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마당에 놓여 있는 작두의 고두쇠부터 슬쩍 빼서 감추고 시치미를 뗐다.
저녁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마구간 쪽으로 갔더니, 주막 주인이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물을 썰어서 말죽을 쒀야 하는데 고두쇠가 없어졌다며 찾고 있었다.
김선달이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마침 내가 부적으로 차고 다니는 게 하나 있는데, 급하면 이것이라도 먼저 쓰시오."
이튿날 아침, 김선달은 밥 한 상을 느긋하게 비운 뒤 짚신을 주섬주섬 신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밥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빌려줬던 고두쇠도 돌려달라고 했다.
주막 주인은 난처했다. 여물을 썰지 못하면 장사를 하지 못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고두쇠를 구하려면 하루나 이틀거리까지 멀리 가야 했다.
"숙박비를 받지 않을 테니, 고두쇠를 주고 가시오. 가다가 다시 구하면 되지 않겠소."
김선달은 "그렇다면 별 수 없군요" 하면서 못 이기는 척 떠났다. 다음 주막에서도 또 고두쇠를 슬쩍했다. 그런 식으로 서울까지 550리 길을 돈 한푼도 들이지 않고 '공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올 여름에는 해외로 휴가 떠나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주머니사정이 껄끄러운 사람은 그럴 재간이 없다. 해외는커녕, 국내 휴가도 가지 못하고 누구처럼 '방콕'하게 생겼다.
작년까지는 은행이나 백화점의 에어컨 앞에서 그럭저럭 '피서'를 할 수도 있었지만 올해는 그것마저 어렵게 생겼다. 정부가 은행·백화점·호텔·놀이공원·대학 등 서비스, 교육기관과 '권장 냉방온도'를 지키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결의'가 지켜지는지 집중 점검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시원하게 보내기는 틀린 것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김선달처럼 공짜로 여행하는 방법을 찾아볼 뿐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주막에 들기 전에, 작두를 여벌로 준비하고 있는 곳인지 반드시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김선달만큼 어지간하게 간을 키워둘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망신살이 뻗칠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볼 게 있다. 국민은 지난 겨울을 제법 쌀쌀하게 보냈다. 대통령부터 청와대 회의실 온도를 섭씨 20도가 되지 않도록 낮추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마운 사람에게 내복 보내기' 행사를 벌였고, 지방자치단체 등은 '범국민 내복 입기 운동'도 폈다. 내복을 껴입고 추위를 견딘 것이다.
그랬던 국민이 이제는 땀을 흘리게 되었다. 정부가 "전기와 가스요금을 순차적으로 인상할 예정"이라고 했으니 선풍기도 불안해졌다. 돈 안 드는 부채질이 상책인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국격'이 치솟고 G-20을 주도하는 나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