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식약청 머리위에서 노나?
24시간내 보고규정 악용해 시간끌기 의혹.."행정당국 기업 봐주기" 불만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동서식품(대표이사 이창환)이 식품 이물신고를 받은 뒤 24시간 내에 보건당국에 보고를 해야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 규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서식품은 지난 3월말 자사 유명 브랜드 커피믹스 일부제품에서 검은 이물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았다. 동서식품은 소비자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1주일이 넘도록 식약청에 이물보고를 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
현행 규정은 영업사원이 현장에서 이물질을 수거해간 때가 아니라, 해당 업체의 본사나 공장에 이물질이 도착한 때부터 24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동서식품의 경우 지방공장을 오가는 동안 이물질 접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24시간 규정을 준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식약청이 식품업체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보고규정에 숨통을 틔워 준 것을 동서식품이 최대한 활용한 셈이 됐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동서식품처럼 영업사원을 현장에 보내 이물질을 회수한 뒤 내부에서 시간을 끌며 소비자를 골탕먹이더라도 이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는 식약청의 규정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더욱이 24시간 보고규정을 위반해도 처벌이 과태료 300만원에 불과하고, 지연 보고에 대해서는 시정명령만 내려질 뿐이어서 식품업체들이 '24시간 내 보고' 규정 자체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 동서식품, 이물 회수 후 ‘늑장보고’ 의혹
경기도 상대원동의 오모(남.30세)씨는 지난 3월31일 동서식품의 '맥스웰하우스 오리지날 커피믹스'를 타 마시려다가 까만 벌레를 발견했다. 오 씨는 당장 회사측에 연락해 검은색 쌀벌레가 발견됐다며 이물 혼입 경위를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 씨에 따르면 이물을 회수하러 온 회사측 영업사원이 “쌀벌레로 보인다”고 말했다. 때문에 오 씨는 동서식품이 보건당국에 보고하고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믿었던 것. 또 동서식품 측과 통화할 때마다 이물 회수 후 24시간내에 식약청 신고를 마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오 씨가 직접 식약청에 확인해보니 지난 4월7일까지 해당 이물에 대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자 동서식품은 부랴부랴 식약청에 신고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 씨가 해당업체 측에 이물신고를 하고, 보건당국에도 연락했지만 사후처리는 형편없었다. 오 씨가 발견한 이물은 충청북도에 소재한 동서식품의 진천공장에 잘못 보내졌다가 다시 인천광역시에 있는 부평공장으로 오는 동안 약 1주일이 소요됐다. 그 뒤로도 행정처리가 계속 지연돼 오 씨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오 씨는 "보통 이물 신고를 하면 서면으로 조사결과를 통보한다고 알고 있는데, 신고한지 3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부평구청에서는 게시판 민원내용에 답글을 달지 않았냐며 엉뚱한 소리만 늘어놨다. 되려 보상이 이뤄진게 없으니 동서식품이랑 잘 얘기하라고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오 씨는 "동서식품이 뒤늦게 이물보고를 하기 전에 식약청 식품관리과에도 여러번 연락했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식약청 관계자들은 동서식품이 늑장보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헛점투성이 이물보고규정을 운영하면서, 대기업이 버젓이 지연보고한 것을 봐준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동서식품은 검은 이물이 쌀벌레(쌀바구미류)로 추정된다면서도, 형태가 온전하고 제조과정 중 혼입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동서식품은 해당제품이 낱개포장으로 돼 있고, 유통기한이나 제조공장 등이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물 신고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이물신고가 지연되지 않도록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오 씨가 발견한 이물(좌)/ 동서식품이 제공한 쌀바구미류 사진(우)
◆ 올해 도입된 24시간 규정 ‘있으나 마나’
식약청은 “올해부터 식품업체는 소비자가 이물 발생 원인규명을 요청하면 24시간 내에 이물 발생 사실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보고해야 한다. 지자체도 신고 된 이물에 대해 발생 원인을 규명해 15일 이내에 소비자에게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1월 4일 발표했다.
만약 식품업체가 이물 발생 사실을 확인한 후 24시간 이내 보고해야 하는 의무 사항을 위반할 경우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24시간내 이물보고규정은 애시당초 식품업체를 배려한 조항으로 이뤄졌다. 오 씨의 경우처럼 식품업체 직원이 이물을 회수한 시점이 아닌, 회사 본사 또는 생산공장 등이 이물을 확인한 때부터 24시간 이내로 했기 때문이다.
오 씨는 “식약청은 식품업체가 24시간내 이물보고를 해야 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면서도, 동서식품이 일주일 이상 지연보고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 씨는 “동서식품 부평공장을 관할하는 부평구청 위생과에서도 이물신고가 늦은 부분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24시간내 보고규정을 만들어 놓고, 공무원들이 대기업 봐주기에 급급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 헛점투성이 규정에도 공무원들 ‘팔짱’
부평공장을 관할하는 부평구청 측에서도 오 씨가 신고한 제품의 이물이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동서식품의 이물 보고가 지연된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최초 이물 회수자가 영업직원이라 최초 발견인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만 했다.
게다가 부평구청 위생과의 업무처리에 화가 난 오 씨가 감사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부평구청 감사실에서는 "6.2 동시지방선거 때문에 업무처리를 (연락을 주기로 한 것을) 깜박했다"고 시인하기까지 했다.
부평구청 위생과에서는 동서식품의 이물보고가 지연됐음을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24시간내 이물보고 규정에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부평구청 위생과 관계자는 "동서식품에 알아보니 5군데에서 커피믹스를 제조하는데, 이번 사례의 경우 진천공장에 이물을 보냈다가 부평구, 그리고 부평공장으로 도착하기까지 시일이 소요됐다. 이 부분은 동서식품 뿐 아니라 여러 곳에 공장을 둔 식품 대기업에 공통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약청 식품관리과는 오 씨가 발견한 이물의 처리상황과 관련해 일관성 없는 답변을 늘어놓고 있다.
지난 4월 오 씨의 제보내용과 관련해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취재에 들어가자 식약청 측에서는 “동서식품이 4월8일에 보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이물보고 지연에 대해서는)문제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근 식약청 관계자는 “동서식품이 이물발생 보고를 지연했다면 해당 지자체에서 행정처분을 내려할 일이다. (24시간내 이물보고규정이 느슨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직 시행한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최소한 1~2년 시행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개선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