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판매 은행 무더기 징계..핵심쟁점 빠진 '속빈강정' 논란
2008년 '키코 사태'가 불거진 지 2년 만에 금융당국이 처음으로 은행 책임을 인정했지만 핵심쟁점인 '불완전 판매' 의혹은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실제로 금감원의 제제내용과 관련해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금감원장 고발 검토 등 '솜방망이 징계'에 강력 반발하고 있어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현재, 키코 피해기업들이 판매은행들을 상대로 진행 중인 150여개 민사소송과 각 은행 임직원 등 형사고발 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향후 '키코분쟁'의 진실이 밝혀질지 관심이 모아자고 있다.
금감원 은행책임 일부인정, 불완전 판매는 제외

금감원은 키코 판매 은행을 조사한 결과 '스노우볼' 등 투기적 성격이 강한 고위험 상품과 기업들의 연간 수출의 125%를 초과하는 통화옵션거래를 취급한 점 등을 적발해 이같은 징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은행에 키코 책임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지만, 그렇다고 키코 판매 자체를 위법이라고 본 것은 아니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키코 판매과정에서 거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불안전 판매' 여부는 이번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은행과 기업간 주장이 다르고, 이를 입증할 구체적 증거도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황동화 팀장은 "키코판매 시 은행들이 적합성의 원칙과 리스크 등 기업의 건전성 측면에서 심사를 소홀히 한 점이 인정됐다"면서도 "쟁점이 됐던 '불완전 판매' 문제는 구두상의 설명과정에서 발생한 거라 입증이 어렵고 현재 법적으로 다투고 있는 부분이라 제외시켰다"고 밝혔다.
황 팀장은 "불완전 판매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다면 다시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키코 피해기업, 금감원의 '은행 편들기' 반발
하지만 키코 피해기업들은 금감원이 '은행 편들기'에 나섰다며 강력반발하고 있다.
공대위는 20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9월 이후 3차례에 걸친 키코 판매은행에 대한 제재심의 결과 발표 연기는 결국 은행을 위한 수위조절에 불과했다"며 "금감원이 손실이전거래, 영문계약서 사용 등 불완전판매 관련 사례를 이미 적발해 놓고도 이번 심의 대상에서는 제외했다"고 분개했다.
공대위는 특히 피봇(PIVOT), 스노볼(Snow Ball)을 고위험상품으로 규정했음에도 고위험 파생상품인 키코 판매 행위가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공대위 측은 금감원에 구체적인 해명을 촉구하는 한편, 금감원장 고발 검토 등 강경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지식경제부와 국회 등 관련기관에 키코사태 관련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보냈다.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통상실 김태환 부장은 "금감원이 은행들의 키코 부실판매와 관련해 조사를 제대로 안했고 징계 역시 솜방망이에 그쳤기 때문에 상급기관인 지식경제부 등 정부부처와 법제위원회,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등에 재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금감원이 불완전 판매 문제를 심사대상에서 제외한 것과 관련해 "과거 금감원의 조사에서 밝혀진 사안을 이제 와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금감원이 계속해서 직무유기성 태도를 보인다면 금감원장 고발 등 적극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6월 24일 금감원 앞에서 열린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집회 현장.
공대위는 은행의 키코 부실판매 의혹을 제기하며 금감원의 직무유기를 지적했다.
키코분쟁 장기화..민․형사 소송 결과 '촉각'
키코(Knock-In, Knock-Out)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키코는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상품이란 이점 때문에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금감원은 키코 피해기업들의 실현손실액은 지난해 8월말 기준으로 2조9천337억원으로 보고 있으며 공대위 측은 실제 피해기업이 1천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키코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8년 4월로 공대위는 금감원에 은행들의 키코 부실 판매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를 촉구했으나 금감원이 사기업과 은행간의 계약이라는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200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키코 문제가 제기됐고 금감원은 2008년 8월부터 14개 은행을 점검한 결과와 관련, 하나․외환․우리․신한․기업․SC제일․한국씨티․대구․산업은행 등 9개 은행이 중소기업의 연간 수출예상액을 초과해 거래계약을 체결하고 거래 기업의 예금인출을 제한한 사실 등 9가지 항목을 적발해 제재심의위원회에 상정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은행 신인도와 키코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은행 측의 요구를 수용해 제재를 1심 판결 뒤로 유보해오다 8월 19일 은행들의 일부 책임을 인정했다. 공대위 측은 은행들이 키코 상품 판매 시 충분한 설명이나 위험성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물론, 키코상품이 마치 수수료 및 증거금이 필요없고 비용이 들지 않는 '제로 프리미엄' 혹은 '제로 코스트(Zero-Cost)'로 속이고 프리미엄 계산표까지 조작해 수억원의 마진을 챙겼다는 주장을 펴왔다.
반면, 은행 측은 시장위험비용, 신용위험비용, 마진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은 것이라고 반박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공대위는 은행들이 기업의 헤지와는 거리가 먼 사실상 투기상품을 기업에 판매했다며 지난 2월 신한은행, 한국씨티은행, 한국외환은행, SC제일은행 등 4개 은행의 임직원 34명을 사기죄로 고발하고 6월 18일에도 우리은행, 산업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경남은행, JP모건, HSBC 은행 등 7개 은행을 추가 고발한 바 있다.
이번 금감원의 키코 판매 은행들에 대한 제제 방침은 미약하나마 향후있을 민.형사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한 9월 국정감사에서 키코관련 사안이 다뤄질 경우 재조사 등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