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한이 서린 피의 노래, 연극 ‘아버지를 죽여라2’

친일파의 자식,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다

2010-08-26     뉴스관리자

흔히 친일파의 자식이라고 하면 싸잡아서 욕하기 바쁘다. 친일파의 피를 이어받은 죄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으레 친일파 자식은 일본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게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친일에 대한 반감과 민족의 혼을 판 반감이 선대를 넘어 그들에게까지 표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혜화동1번지에서 선보인 연극 ‘아버지를 죽여라2’는 좀 다른 시각으로 친일파 자식을 바라본다.

 

- 조국과 아버지, 그 선택의 기로


새로운 역사를 쓰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과거사 청산이다. 연극 ‘아버지를 죽여라2’ 역시 아버지 세대의 과오를 바로 잡고자 한다. 과거사 청산이라는 게 꼭 피를 보고야 만다. 바로잡고자 하는 자의 피가 됐든, 그 반대가 됐든 말이다. 이 연극 또한 피로 물든다. 극 중 이상원은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 때문에 고뇌한다. 반일투쟁단체의 소속원인 동시에 친일파의 자식, 이게 그가 처한 상황이다. 그는 ‘오이디푸스 왕’ 대사를 읊으며 자신과 오이디푸스를 동일시한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운명이었듯 자신도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운명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의 읊조림은 누구에게 말을 건넨다기보다 자기 최면으로 들린다.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고 자신에게 각인시킨다.

 

- 부정의 몸부림


제 아버지가 아무리 ‘천하의 나쁜 놈’이라 할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또한, 피는 물보다 진하듯 피가 당기는 것도 사실이다. 대의를 위해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 따윈 배제해야 한다고 한들 당사자에게는 그 현실이 벅참을 너머 비극이다.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사실을 묵인해야 하는 이상원도, 동지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그의 친구들 역시 심간이 편치 못하다. 관객 역시 그들의 처지가 기막히긴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상황에 대한 회피의 욕구가 일지만 극 중 인물은 미련하리만치 힘든 현실을 손에 꼭 쥐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독립군과 오버랩 된다. 저들의 저런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일순간 소름이 돋는다.

 

- 불효자는 울지만, 불효자의 아버지는 가무를 즐긴다


이상원이 ‘아버지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는 고민에 허덕일 때 이 친일파 아버지는 평화로이 음주를 즐긴다. 그 역시 아버지로서 자식 걱정이 없겠느냐마는 이상원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가벼워 보인다. 어찌 됐든 이상원은 아버지를 죽여야 하기에 마음이 한결 무거울 수밖에 없다. 자식의 그런 속내를 알 길 없는 그의 아버지는 집에서도 기모노를 입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자식은 속이 터진다. 그들의 사상이 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ㄴ자’ 형태의 무대 역시 친일파 아버지와 이상원의 무리를 갈라놓는다. 아버지가 음주를 즐기고 있을 때 무대 한 켠의 이상원 무리는 고문을 당하는 등 그들의 처지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 피는 곧 피를 부른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부서지듯 이상원의 동지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 뼈아픈 상황에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이상원은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룬다. 연극은 여기서 끝이 난다. 이상원의 칼에 아버지가 죽었는지 어땠는지 확실치 않다. 그 놀라운 결말에 자리를 도망치듯 극장을 벗어나기 바쁘다. 자리를 피해도 그 피의 잔상은 계속 남아 뇌리에 머문다. 연극 속 상황은 불편하지만 지난 과거가 없었다면 오늘날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들의 피의 노래가 한스럽지만 감사하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