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는 ‘루나틱’
살짝 미쳐서 더 행복한 그들
뮤지컬 ‘루나틱’은 루나틱(lunatic)이라는 문자 그대로 정신병자가 주인공이다. 정신병자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이 미치광이들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들의 행동이 남다른 건 사실이나 미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굳이 그들과 ‘보통 사람’의 차이점을 꼽자면, 자기감정에 솔직하다는 거다. 자신의 감정을 꼭꼭 숨긴 채 경직된 표정의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해맑고 숨김없다. 그 해맑은 모습은 관객에게 전해져 공연을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실 줄 모른다. 그리고 관객의 손은 박수 치고자 존재하는 것처럼 연방 손뼉을 치기 바쁘다.
- 관객 참여형 뮤지컬은 이런 것
뮤지컬 ‘루나틱’의 출연진은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한다.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손뼉을 쳐달라고 하는가 하면, 자신의 물음에 큰소리로 꼬박꼬박 대답하란다.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다음 장면은 없다. 관객은 배우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배우들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다양하다. 그들은 관객이 한눈팔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건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도 어느 틈엔가 폴라로이드를 꺼내 관객 얼굴을 마구 찍어대고, 또 그 사진을 객석으로 내던지는 등 끊임없이 관객에게 들이댄다. 이미 객석과 무대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관객 역시 사라진다. 배우는 이런 상황을 예고하듯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 객석을 휘젓고 다니며, 관객에게 말을 걸고 심지어는 사진까지 함께 찍자고 한다.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 암전 따윈 필요 없어
이 공연 특징은 암전이 없다는 거다. 관객은 불이 꺼진 무대에서 배우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기 마련인데, 뮤지컬 ‘루나틱’은 관객에게 감추는 게 없다. 그냥 훤히 드러내 보인다. 암전이 없는 것은 1, 2층으로 나뉜 무대 덕분이기도 하다. 2층에서 배우의 연기가 한창인데 1층은 세트교체가 한창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다음 장면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게 아니라 극을 함께 만들어 간다. 뮤지컬 ‘루나틱’은 소극장 공연에서 이번 공연부터 대극장 공연으로 바뀌었다. 대극장 공연이라는 게 자칫 잘못하면 배우들만 신나는 자기만의 공연이 되기 십상인데, 이 공연은 배우들의 부지런함 덕분인지 관객과의 호흡이 소극장 공연 못지않게 농밀하다.
- 모두에게 친절한 굿닥터
짤막짤막한 스토리가 모여 하나의 극을 구성함에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굿닥터의 존재 덕분이다. 굿닥터는 환자의 이야기를 유도하기도 하고, 부연설명도 해주며 캐릭터가 분명한 그들의 연기에 간극을 조절한다. 전체적인 극을 이끌어 나가는 굿닥터는 관객과 배우를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로 활약한다. 굿닥터의 본래 꿈이 가수였던 만큼 놀랄만한 노래실력을 뽐낸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굿닥터의 음성에 관객은 모두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고 노래 속으로 빠져든다.
- 톡톡 튀는 매력 만점의 캐릭터
환자들은 지난 과거를 보여주며, 자신이 어떻게 정신병자가 됐는지 알려준다. 본인에게는 아픈 상처겠지만 보는 이는 유쾌하다. 바람둥이 나제비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과 ‘일거’라고 외치는 고독해의 뻔뻔스러움 그리고 해맑은 정상인에게 숨겨진 아픔은 완벽한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들은 모두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정신세계가 남다르지만 인생을 즐기는 것에 있어서는 최고다. 진정제대신 춤과 노래로 마음을 다스린다는 굿닥터의 소신 아래 환자들의 흥겨운 무대는 몇 차례 반복된다. 나중에는 관객들도 함께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커튼콜
주요 넘버를 굿닥터가 한 소절 한 소절씩 관객에게 알려준다. 함께 부르자는 의도다. 그리고는 앉아 있는 관객을 결국 일어나게 한다. 커튼콜이라기보다는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배우들이 나오면 관객은 격렬한 호응을 보낸다. 굿닥터에게 배운 넘버가 나왔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공연장이 떠나가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관객과 하나 되어 호흡하는 것, 이게 뮤지컬 ‘루나틱’의 힘이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