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얼룩진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빨아줄 뮤지컬 ‘빨래’
오늘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정겨운 인생살이
지친 삶을 등에 업고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면 우리는 도착할 수 있다. 턱까지 가쁜 숨이 차올라도 그 높은 곳에서 숨을 토해낼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 그곳이 하늘과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서울에서도 손을 뻗으면 캄캄한 어둠속에 빛을 내뿜는 달을 만질 수 있다. 이곳은 달과 가까운 달동네다. 옹기종기 빼곡하게 들어선 낮고 낡은 집들은 몸을 부대끼며 외로움을 달랜다. 높고 높은 달동네 중에서도 제일 높다고 소문난 옥탑방 앞에는 기다란 줄이 길게 걸려있다. 그 얇고 아슬아슬한 삶의 줄에 걸린 우리의 희로애락은 오늘도 바람에 나부낀다. 무겁게 젖어 뚝뚝 서럽게 눈물을 흘려도,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으며 곧 울음을 그칠 기세로 흩날린다. 얼룩졌던 아픔과 슬픔들은 어느새 빨래를 통해 마법처럼 사라진다. 희망과 사랑의 향기만이 남아 코끝에 맴돌 뿐이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에 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다뤘다는 점에서 관객들과 매우 가깝게 소통 할 수 있는 유리함을 지녔다. 늘 우리가 접하고, 감성을 자극하고, 향수를 들끓게 하는 소재의 공통점이 있다. 내 슬픔을 누군가 알아서 그대로 그려주고 그것에 공감해주며 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습자지처럼 찢어질 듯 얇아진 마음의 막을 보호해줄 공감이 모두를 감동시키는 법이다. 이 작품은 90년대 중반, 달동네의 힘겨운 삶과 애환을 그린 최고의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일까. 익숙함과 반가운 느낌을 한층 끌고 가는 이 작품은 관객들의 몸을 무대 앞으로 45도 끌어당기며 시작한다.
무대는 어느 하나 실감나지 않는 부분이 없다. 무대의 리얼리티는 관객들을 이미 빨래들이 널린 달동네로 끌어 모아 앉혀놓았다. ‘빨래만 보아도 그 집의 속사정을 모두 알 수 있다’는 극 중 ‘주인 할매’의 말처럼 관객들은 빨래를 보며 집집마다의 사정을 예측해본다. 낡아 빠진 문짝들, 부킹 100퍼센트의 문구가 걸린 나이트, 빛을 뿜으며 바쁘게 돌아가는 미용실 팻말, 마른 오징어를 파는 동네 구멍가게 등. 손을 뻗으면 그들이 처한 힘겨운 상황, 달동네 사글세를 전전하는 억척스러운 삶의 환경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극의 느낌을 고급스럽게 끌고 나가는 뮤지컬 ‘빨래’는 넘버가 매우 인상적이다. 처음 듣는 낯선 곡의 새로움과 편안한 익숙함 까지 있다. 저절로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넘버의 가사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감성을 들쑤신다. 대중가요처럼 쉽게 반복되는 구절과, 낯익음은 구슬픈 마음을 한 층 더 진동케 한다.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 하나쯤 마음에 안고 살지 않는 사람 없다. 아픔으로 때탄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뮤지컬 ‘빨래’는 마음의 상처를 빨래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해준다. 관람 후에 남는 것은 묵은 슬픔들과 낡은 상처들이 빠져나가 희망으로 가득한 마음의 깨끗한 여백이다. 개운함으로 인해 기지개가 저절로 나온다. 무거운 삶에 짓눌려 바닥까지 허리를 굽히고 젖은 빨래와 같이 눈물 흘리고 있다면 망설이지 마라. 햇볕 좋은 날 우리도 빨래를 하면 된다.
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