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대부' 이호준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실화소설 '길위의 사람들' 전자출판..노숙인 삶과 부조리 비판

2010-10-19     임민희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노숙인 권익보호단체인 실직노숙인조합 이호준 위원장이 지난 10년간 부산역 광장에서 지내며 보아왔던 노숙인들의 피폐한 실상과 부조리한 사회이면들을 담아 소설 '길 위에 사람들'을 출판했다.

이 위원장은 노숙인들 사이에서 ‘노숙자 대부’로 불린다. 그는 임금체불, 청년실업 등 노숙자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와 인권유린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변호사나 주변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도움을 주고 언론을 통해 이러한 실상을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이호준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이 위원장은 노숙인들의 삶과 사회 부조리한
이면을 파헤친 실화소설 '길 위에 사람들'을 출판했다.


이 위원장이 노숙인 문제에 뛰어든 것은 그의 고된 삶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문화복지법인 여섯줄 사랑회의 대표라는 직함이 말해주듯 본업은 가수 겸 작곡가다.

이씨는 20살 때 '사랑은 소리없은 아픔으로' '비개인 오후' 등으로 작곡가로 데뷔 후 가수로 활동했다. 서울, 경기 등지에서 공연을 하면서 ‘거리의 음악가’란 애칭을 얻었고 부산에서 노숙인들을 만나 자신의 재능으로 모은 수익을 독거노인이나 노숙인 지원금으로 기부하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몇 주간 노숙생활을 하면서 노숙인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낯선 부산이 그의 제2의 고향이 됐다.

이 위원장은 "노숙인의 문제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가정파괴, 가출, 지원금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구조적 병폐"라며 "사회지도층과 지성인들이 이를 '소수자들만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대안을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10여 년간 부산역에서 '거리의 음악가' '노숙인 대부' 등으로 불리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살아왔다. 이제는 소설가로 첫걸음을 내딛게 됐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 3년 전 노숙인들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음반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한 지인이 내가 모 인터넷 신문에 연재한 칼럼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며 소설을 써볼 것을 권유해 쓰기 시작했다.

부산역에서 불우이웃돕기모금공연을 도와주러 왔다가 우연히 노숙인들을 알게 됐다.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하면서 그들과 함께 10년을 지냈다. 실직노숙인조합위원장으로 7년이다. 굳지 말하지 않아도 책 몇 권의 이야기는 있지 않겠는가.

e-book(전자책) 출판을 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 어려움이라고 하면 소설을 쓰는 것 보다 출판이 문제였다. 당초 종이출판을 하려고 여러 출판사를 알아봤는데 출판사측이 상식이하의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모시사주간지에서 연재를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연재를 시작했다. 전자출판사 대표가 주간지에 실린 내 소설의 일부분을 읽고 출판을 제의해 하게 됐다. 

소설 '길 위에 사람들’의 주인공은 노숙인들이다. 여타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노숙인들이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주변인일 뿐 이 작품처럼 노숙인들의 처절한 삶과 일상을 그려낸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 소설 속의 노숙인들도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헌법을 준수하는 국민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스토리의 중심에서 세상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부디 사회지도층들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소수자들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제를 알았으면 몇 마디 말로만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이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소설 속 인물들은 노숙인들을 돕는 경계인 '준'과 알콜중독자 명우, 노숙인 깡패 '지훈', 먹을 것으로 복음을 강요하는 종교인, 이를 방관하는 정치인 등 모두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삼고 있다.

- 이젠 죽어 기억 속에 사람들도 있지만 매일 또는 가끔가다 보는 사람들이다. 현재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비일비재한 상식이하의 세상이야기들 그러나 세상 제도나 규범의 규제하고는 먼 나라이야기여서 가장 절실하게 감수하고 인정하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이중 명우는 실직노숙인조합을 같이 조직한 몇 사람 중에 한명이다. 지방에서는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한 친군데 사회전반적인 지식에 해박한 친구다. 뭐 현재도 그렇지만 언변이나 인물, 덩치도 있어 사람들도 잘 따랐는데 지금은 알콜중독자다. 예전에는 정신병원에 끌려가 구타를 당해 모 시사주간지에 크게 보도된 적도 있다.

'노숙자 대부'라는 명성이 말해주듯 이 소설에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듯하다. 특히, ‘앵벌이’나 ‘종교인들의 포교활동’ 등 여러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있는데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문제는 뭐라고 보나?

- 종교인이다.

사람이 옆에서 다 죽어가도 '할렐루야 아멘'으로 영생만 부르짖는 종교인, 어디 아프냐는 말 한마디 안 물어보고 행려로, 정신병원으로 15~20만원을 받고 넘겨버리는 종교인,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준다며 지원금 받지만 실상은 노숙인을 외면하는 종교인, 장애노숙인들 데려다 생활보호대상자로 만들고 방값과 밥값을 챙겨가는 종교인, 마음에 안 든다고 악마니 뭐니 하며 세뇌시켜 분열을 조장하는 종교인, 농장일과 밭일 등을 소개시켜주고 일해서 받은 쥐꼬리만 한 임금을 십일조나 밥값, 잠자리제공이란 명목으로 다 빼앗아가는 종교인, 노숙인을 돕겠다는 이들이 있어도 종교인이 아니면 매도하고 배척하는 종교인 등등 세세히 다 열거하자면 하루가 모자르다.

물론 모든 종교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교’를 앞세워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의 인권을 착취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이중적 행태는 비난받아야 한다.

실화소설이라는 점에서 소설 속 장소나 등장인물들의 행동, 어투는 현실의 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논리정연한 칼럼형식이 주를 이루면서도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묘사는 '무협만화'를 보는 듯 흥미롭고 세밀하다.

- 솔직히 얘기하면 많이 읽혀지고 많이 팔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노숙인들을 위한 활동가들의 대부분이 종교인이다. 그러다보니 종교적 논리가 없거나 싫은 사람들은 발붙일 수가 없다. 그래서 종교의 복음이 아닌 인본주의적인 이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노숙인을 위해 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노숙인의 문제는 종교적 문제가 아닌 청년실업, 비정규직, 가정파괴, 가출, 지원금 등의 사회전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003년에 실직노숙인조합을 설립했지만 아직까지 사무실이나 경제적 여건 등의 문제로 비공식단체다. 책 판매수입은 실직노숙인조합이 공식단체가 되는데 쓸 생각이다.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점은 무엇인가? 노숙인들의 실체 또는 노숙인들을 방관하는 현 사회에 비판을 가하기 위함인가?

- 쓰는 내내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양성을 바탕에서 보편적인 시각으로 실체를 말하고 비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읽는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노숙인 문제와 관련된 책을 지속적으로 집필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 이미 쓰고 있다. 이번 소설 또한 경험한 인물들과 스토리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소설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면 디지털 싱글도 준비 중이다. 이 또한 모든 수입은 실직노숙인 조합 운영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독자들 혹은 이 시대의 지성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많은 사람들은 변화를 원한다. 하지만 다수가 행복해지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IMF, 각종 어업협정, 한미 FTA, 도시난개발, 4대강개발 등 정치인에게는 업적일 수도 있고 기업가에게는 한 몫 잡을 수 있는 기회일수 있지만 누군가는 모든 걸 '합법'이란 이름하에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려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 교묘하게 조작한 스펙터클효과가 사회적 합의나 도덕적 동의인 마냥 방임, 방관해 왔었다. 그런데 인간이 내미는 손과 떠드는 입의 실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절대적 관심으로 몇몇이 정해놓은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양한 관심으로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 비판하고 설득하는 지혜를 선택할 것인가는 각자에 선택에 맞기고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