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의 무책임한 '중국' 타령
얼마전 장을 보러나가 배추 1망(3포기)을 단돈 2천원에 구입했다. 꾹꾹 눌러가며 튼실한 놈으로 쇼핑카트에 담았다. 그런데 다른 소비자들은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한 주부가 다가와서는 얼마냐고 물었다. 2천원이라는 말에 반색하더니 ‘중국산 배추’란 걸 알고는 얼굴색이 변했다.
집에 돌아와 배추를 갈라보니 고갱이가 노릇한 게 먹음직스러웠다. 소문과 달리, 중국산 배추도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중국산’은 찬밥 신세가 된 걸까. 중국산 배추는 억울할 것 같다. 중국에서도 배추는 ‘금(金)추’라고 하던데 말이다.
아마도 언제부턴가 중국산 먹을거리가 안전하지 못한 식품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은 탓이리라.
최근 서울시와 식품의약품안전청 사이에 벌어진 낙지 논쟁에서도 중국산은 '불량식품'으로써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지난 9월 서울시는 낙지 머리에 기준치를 초과한 중금속이 검출됐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어민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몸에 좋은 먹물이 들어있다고 남김없이 먹었던 낙지머리가 중금속 덩어리라니 매출은 급감했다.
그러자 식약청이 9월말에 이례적으로 수산물에 대한 브리핑을 열어 서울시 발표와 어긋나는 정밀검사 결과를 공개했다. 인체에 위해할 정도로 중금속이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서울시가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다.
어민들은 울화통이 치밀었다. 멍청한 서울시 공무원들이 밥줄을 끊게 만들었다는 질타가 잇따랐다.
서울시와 식약청 간에 지루하게 계속되던 낙지 논쟁은 며칠 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중금속이 검출된 낙지가 ‘중국산’으로 밝혀졌고 국내산은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그같은 발표가 나온 뒤 논란은 수그러들고 소비자들은 낙지에 대한 불안감을 빠르게 걷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어느새 사람들이 ‘아하, 중국산이니까’란 식으로 쉽게 수긍을 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정말로 중국산 먹을거리에는 중금속과 농약이 잔뜩 들어 있고, 그래서 중국산 농수산물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되는 일일까? 우리 실생활 속에 중국산 아닌 것들이 없는게 없을 정도로 많은데 말이다.
특히 먹을거리 분야는 더 그렇다. 국내에서 자급률이 높은 쌀 등의 몇몇 농수산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죄다 수입하고 있다. 사실 시장통에서 중국산 배추나 낙지를 고르라고 하면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일반 소비자들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서 중국산 먹을거리에 대해서는 막연한 불신감만 품고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중금속이 든 중국산 낙지가 국산으로 둔갑, 시중에 유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산이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런 먹을거리가 국내에 들어와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웃나라 일본은 검역과 보건에 철저하고 지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은 최근 한국의 일부 양계농가에서 '저병원성' AI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한국산 닭고기 수입을 중단시켰다. 올해 초에서 구제역을 이유로 한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시켰고, 미국산 쇠고기의 제한 수입을 고집하는 등 자국민의 식품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려 하고 있다.
우리 행정당국이 해야 할 일은 '시중에서 팔리는 낙지가 위험하다'고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도, '국산은 안전하니까 먹어도 된다'고 홍보하는 게 아니다.
유해한 식품이 이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그래도 들어온 게 있으면 찾아서 퇴출시켜야 한다. '중국산' 타령만으로는 국민의 밥상을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