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과감한 베팅으로 대어 낚아

‘승리자의 저주?’···관련주는 일제 하락

2010-11-16     양우람 기자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벌인 한 판 승부에서 자금력을 앞세운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현대그룹이 승리를 거둔 것은 경영권 보호를 위한 과감한 베팅이 가져온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초 이번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업계에서는 막강 계열사를 거느린 현대자동차그룹이 자금력 면에서는 크게 앞서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사의 현금성 자산만을 동원해도 10조원을 웃돌아 외부자금 조달 없이 무난히 입찰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현대그룹은 주력사인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계열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을 통해 1조9000억 가량을 마련했고 동양종금증권을 투자자로 끌어들여 7000억원을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나아가 독일계 재무 투자사인 M+W 그룹이 본입찰 나흘을 앞두고 컨소시엄에서 빠지겠다는 뜻을 밝혀와 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현대그룹에 시름을 더했다.   


하지만 막상 채권단에 전달된 양측의 입찰가격을 보면 현대그룹이 제시한 금액이 5조원 이상으로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금액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업계의 관심은 현대그룹이 실제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입찰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그룹 측이 구체적인 자금 마련 계획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던 바람에 이러한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증시에도 즉각 반영돼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된 이후 현대그룹 계열사와 현대건설 주가가 일제히 급락한 반면 현대자동차 계열사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그룹 내부적으로도 인수과정에 필요한 자금 조성 계획을 선명하게 밝히고 향후 투자자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경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현대그룹 당면과제로 꼽히고 있다. 


현대그룹은 인수 문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매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상선 경영권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록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의 지분은 8.3%에 불과하지만 이를 넘겨줄 경우 현대그룹의 지분이 50%대로 떨어져 경영권이 크게 흔들릴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현실화되면 그룹 총 자산은 22조 3000억원으로 뛰고 재계 서열도 5계단 올라 12위가 된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상대적으로 인수 자금 동원 능력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협상대상 후순위로 밀려나면서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몽구 회장으로서는 이번 인수전이 ‘현대가의 적통성’을 놓고 벌이는 대결로 주목을 끌어 왔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인수 실패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현대자동차그룹 이미지에도 일정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며 세대교체가 예상되는 연말 인사와 맞물려 어떻게든 후폭풍이 일지 않겠느냐는 업계의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