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폐기 매트리스 새 침대로 감쪽 둔갑

가정집 개조해 암암리 생산·유통..단속 규정없어 당국 수수방관

2010-12-07     양우람 기자

침대 폐 매트리스를 수거해 새것처럼 둔갑시킨 재활용 매트리스가 시중에 여전히 나돌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TV 시사 프로그램등을 통해 수차례 여론이 들끓었지만 관련 처리 규정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당국의 단속 의지마저도 부족한 상황이라서 폐기 매트리스 유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한통의 제보가 접수됐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사는 주민이라고 밝힌 제보자는 자신의 집 부근에 폐 매트리스 가공공장이 성업중이며 새것처럼 둔갑한 제품이 수시로 반출되고 있다며 실태를 취재해주도록 요청했다.


◆가정집 개조한 폐매트리스 재활용 공장


제보를 받고 취재팀이 출동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244번지. 마을 야산 아래로 이어지는 골목의 끝자락에 두 채의 컨테이너형 공장과 기숙사처럼 보이는 별채가 있었다. 


공장 주변에는 먼지가 가득 앉은  매트리스와 침대용 스프링, 각목 따위가 야적돼 있다.


               ▲ 폐기 매트리스가 새 것으로 탈바꿈하는 현장. 별채 주변에 제작에 필요한 부속품 들이

               쌓여있다.


울타리와 천막이 둘러져 있어 외부와 차단된 공장 안에서는 크고 둔탁한 기계소리와 사람이 오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직원으로 추정되는 몇몇 외국인 노동자들이 컨테이너 공장을 드나들었다. 공장 크기로 미루어 가족 중심의 수공업 형태가 아니라 훨씬 큰 규모로 공장이 운영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 허 모(여. 43세)씨는 문제의 공장 주변에 놓인 헌 매트리스, 침대 스프링 따위를 어디에 사용하는지 궁금해 이를 주시하고 있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허 씨는 “주기적으로 안에서 사람이 나와 폐기 매트리스를 건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면  새 것처럼 보이는 매트리스가 트럭에 잔뜩 실려 어디론가 옮겨지는 모습이 반복되곤 한다”고 전했다.


허 씨는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폐 매트리스가 새 걸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여겨졌다"며 “어서 빨리 공장이 문 닫도록 행정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작업에 쓰일 헌 매트리스, 침대용 스프링, 나무 뼈대 등이 주위에 널려 있다. 뒤에는 운

               송차량도 보인다.


주변을 취재하던중 본인 트럭으로 이 공장에서 생산한 매트리스를 운송한 적이 있다는 서 모(남. 48세)씨와 연락이 닿아 추가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씨에 따르면 이들은 숙박업소 등이 폐기하는 매트리스를 헐값에 사들여 공급하는 전문 업체로부터 물건을 조달해 단순히  커버를 덧 쒸우는 방법으로 헌 매트리스를 새것으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서 씨는 “이곳에서 의뢰받은 매트리스를 속초 지역의 한 가구 판매점에 전달했다”며 “이후 이 판매점이  매트리스와 부속품을 조립해 새 침대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이 공장의 대표인 이 모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최근에 사업을 접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 건물에 둘러져 있는 철망과 천막은 작업 현장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 단속 근거없어

 

이처럼 소비자를 속이는 재활용 매트리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전히 생산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법적 규제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행정 기관이 법적용의 애매함을 핑계로 아무런 단속도 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만 속아서 사는 악습이 반복되고 있다. 


업주 이 씨는 정식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작업장 주소지 역시 주거용으로 등록돼 있지만 사실상 관할 기관은 이러한 제조 행위에 대해 별다른 제제를 가하고 있지 않다.    


화도읍은 단속권이 없다며 상위 기관인 남양주시에 책임을 넘겼고 남양주시는 현행법상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수차례의 민원에도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관련법에선 500평 이상의 제조 업소일 경우만 권고 사항으로 이를 행정기관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가정집을 개조해 제조 행위를 하는 경우는 그 자체로 신고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트리스는 폐기물 관리법상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있지만 이를 재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법에 명시된 내용이 없다”며 “환경법, 품질관리법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속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비자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

 

당국이 폐기 매트리스 재활용 문제를 그다지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매트리스를 구입하기 위해선 스스로 꼼꼼히 살피는 것외에 방법이 없다.


지난 2000년부터 ‘품질관리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모든 침대 매트리스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연구소에서 안전검사 및 인증을 거쳐 KPS 자율안전확인 마크를 부착하도록 돼 있다.


소비자가 어디에 쓰였는지도 모를 재생 매트리스 구입을 피하기 위해선 물건을 사기 전에 이를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또, 최근 한국침대협회는 보증라벨을 부착해 소속사가 재생 매트리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경우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소비자에게는 구입가의 10배를 돌려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매트리스를 만져봤을 때 스프링이 직접 손으로 느껴지고 스프링에서 소리가 나는 듯하다면 재생 여부를 의심해 볼 수 있다”며 “지나치게 저가의 제품도 내장재의 질이 낮고 폐 제품일 수 있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양우람 기자]

       

               ▲ 야산 아래 웅크리고 있는 이곳에서 매일 여관에서 버려지는 헌 매트리스가 새 것으로 둔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