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리운전 한탕 무법 질주
거스름돈 챙기고 웃돈 요구, 쿠폰은 휴지조각..'길빵'이용 자제
연말 송년회 등 술자리가 늘어나면서 대리운전도 특수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성수기엔 으례 거스름 돈을 거부하거나 과도한 이용요금을 청구하는 등의 얌체 기사들이 많아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보험 가입도 하지 않은 채 난폭운전을 일삼고, 소비자의 불만에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단골로 이용할 경우 쿠폰을 제공해 가격할인이나 공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현혹하지만 헛구호에 그치기도 일쑤다.
그러나 현재 대리운전기사는 직업군으로 분류조차 안 돼 있어 관련 법령이 없는 무법지대나 다름없다. 소비자 스스로의 피해예방만이 최우선이다.
◆지각은 기본 난폭운전은 덤
서울 하왕십리동의 박 모(남.34세)씨는 얼마 전 새벽 12시께 대리운전을 불렀다. 금방 도착한다던 기사는 40분이 지난 뒤에야 도착했다.
소비자 임 모(남)씨는 "한 시간 가량 늦게 도착한 기사에게 다른 곳을 이용하겠다고 말한 뒤 '음주운전 하다 죽어라'는 끔찍한 말을 듣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부산 명지동의 이 모(여.22세)씨는 지난 4월 새벽 대리운전을 이용하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 씨의 요청에도 불구 기사의 난폭운전은 그칠 줄 몰랐다.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에서 전화통화는 기본이고 문자까지 서슴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차체가 차선을 넘나드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2~3회 타면 1번 공짜?
부산 반여동의 윤 모(남.45세)씨는 최근 잦아지는 술자리로 대리운전을 자주 이용했다.
한두 번 타고 말 것이 아니기에 '2번 이용하면 1번은 공짜'라고 광고하는 대리운전업체를 이용했다.
며칠전 윤 씨는 어김없이 음주를 하고 하루에 2번 이 업체의 대리운전을 이용했다.
그리고 얼마 뒤 공짜탑승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자체규정상 하루에 2회 이용한 것은 한 번으로 계산된다는 게 이유였다.
광고에는 아무런 언급도 되지 않은 자체규정에 윤 씨는 황당하기만 했다.
윤 씨와 같은 업체를 이용한 부산 부용동의 정 모(남.45세)씨 또한 공짜탑승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정 씨는 "다른 날 한 번씩 두 번을 탄 뒤 3번째 전화를 하니 마일리지 사용기간이 끝나 공짜탑승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대전 유성구의 정 모(남)씨는 '3번 이용하면 1회 공짜'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업체를 바꾸기까지 했다.
평소 타던 곳 보다 20%가량 요금이 비쌌지만 3번에 1번 공짜로 타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3번째 공짜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대리기사를 불렀으나 연말이라 기사 배정이 어렵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귀가를 위해 다른 업체 기사를 불러야만 했다.
◆거스름돈은 팁?…불만 토로하면 '욕설 폭탄'
대전 서구의 정 모(남)씨는 최근 술자리가 끝나고 대리운전을 이용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집에 도착해 대리운전비를 지불하며 1만5천원을 주자 기사가 잔돈이 없다며 거슬러 주지도 않은 채 가버린 것. 대리운전비는 1만2천원이었다.
서울 길음동의 홍 모(남)씨는 작년 직장 동료와 함께 대리운전을 이용하고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 근교 1만2천원이라는 싼 요금으로 광고하는 업체였는데 기사가 없다며 협력업체를 소개해줬다.
문제는 소개받은 곳의 요금이 1만5천원이었던 것.
홍 씨는 1만2천원의 최저가 요금을 광고한 뒤 3천원을 더 챙기려고 협력업체 소개방식이란 편법을 쓰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동승한 동료를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내려주려고 하자 5천원의 추가요금을 요구했다.
불만을 제기해 봤지만 허사였다. 실랑이 끝에 추가요금을 받아간 대리기사는 조금 뒤 홍 씨에게 '인생 똑바로 살라'는 욕설이 담긴 문자를 보내왔다.
◆무보험 대리기사 사고책임은 차주 몫
부산 사상구의 강 모(남)씨는 회식을 마치고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하던 중 기사의 신호위반에 반대차선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다.
그러나 강 씨는 운전대를 잡았던 대리기사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수리비와 치료비 등의 보상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피해상담사례에 따르면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하던 A씨는 경기도 이천시 부근 3번 국도상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차로 치어 사망케 하는 사고를 겪었다.
대리기사는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고 차주 책임 보험으로 1억원을 보상해야 했다. 게다가 피해자 유족 측에서 차주에게 1억5천만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A씨의 월급과 전세금은 모두 가압류 당했다.
◆대리운전 실태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 결과 현재 대리운전은 전국적으로 7천여 업체 8만~12만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대리운전은 자유업으로 분류돼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된다. 이때문에 영세 업체가 난립, 가격인하 경쟁으로 무보험 운전자가 많아져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또 대리운전에 대한 법령이나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늘어나고 있는 각종 피해에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대리운전 관련한 민원이 2005년 111건, 2007년 103건, 2009년 172건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대리운전으로 24명이 숨지고, 1천859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대리운전협회 관계자는 "대리운전 피해를 당한 소비자들이 소비자원 및 경찰서에 신고를 하지만 보상 등 실효성은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이는 대리운전업체 및 기사를 마땅히 제재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리운전을 이용할 때 일명 '길빵'이라고 불리는 뜨내기 대리기사가 아닌 비용을 조금 더 들이더라도 대형업체의 콜센터를 통하는 게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현실적으로 1만5천원 이하의 비용으로는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며 "특히 길빵의 경우 대부분이 무보험 대리운전자라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는 모조리 차주 책임이 되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