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양배추5천원,오징어3천원 귀족반찬
[포토]먹거리 값 폭등 가계'휘청'.. 장바구니 담아보니 작년2배
일요일인 19일 오후 이마트 자양점. 딸과 함께 장을 보러 나온 송 모(여.46세)씨는 채소코너 앞에서 양배추를 쇼핑 카트에 집어넣으려다 가격표를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양배추 한 통이 무려 4천480원. 결국 양배추 대신 가격이 그래도 조금 싼 양상추를 선택했다. 송 씨는 "저번 달엔 배추더니 이번에는 양배추냐. 채소 값이 너무 올라 살림살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채소, 과일, 수산물 등 신선식품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민식탁에 오르는 식재료 값이 지난해보다 2~3배 이상 올라 소비자들은 장보기가 무서운 지경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신선식품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37.4% 상승했다. 특히 양배추(315.3%) 무(178.9%) 배추(140.8%) 대파(113.9%) 토마토(104.8%) 깐마늘(97.3%)은 등 신선채소가 폭등했다. 겨울 식탁에 가장 만만하게 오르던 오징어(48.6%) 고등어 (39%) 등 신선어개도 큰 폭으로 올라 '귀족반찬'이 됐다.
◆같은 품목 카트에 담아보니.. 2010년-2만9천230원 vs 2009년-1만2천350원
신선식품 물가상승을 체감하기 위해 직접 카트를 끌고 나섰다. 가정에서 주로 장을 보는 품목들을 차례차례 실었다. 배추 한 통(2천880원) 대파 300g(1천680원) 토마토 1.2kg(6천980원) 무 한 개(2천480원) 양배추 한 통(4천480원) 깐마늘 500g(7천750원) 오징어 1미(2천980원). 카트 바닥만 겨우 채워질 정도였는데 총 가격은 이미 3만원에 달했다.
겁나는 가격 때문에 마트 안 신선식품 매대는 대체적으로 한산했다. 반짝 세일 하는 품목 앞에만 사람들이 북적일 뿐이었다. 저녁 장을 보러 나왔다는 주부 김선희(38)씨는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 가공식품보다 신선식품을 구입해 조리하고 있는데 찬거리 부담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힘들다"며 "정부에선 물가를 잡겠다고 몇번이나 공언했지만 여름부터 이어진 폭등세가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 신선식품을 카트에 담아본 결과 총 가격은 3만원 정도. 작년보다 3배 상승한 가격이다.
물가폭등은 한국물가협회에서 발표한 2009년 12월 16일 가격과 비교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카트에 담은 품목을 지난해 똑같이 구매했다면 계산서엔 1만 2천원 정도가 찍혔을 것이다(표 참조). 이마트에서 기자가 계산한 금액의 1/3정도다.
◆상인들 "물건이 없다" 좌판도 휑해
재래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일 저녁 자양골목시장 입구에 자리한 농산물 가게 직원인 박 모(남.28세)씨는 허연 입김을 뿜어가며 "싸게 드립니다"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연신 소리쳤다.
박 씨는 "원래 이 정도로 소리치면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관심을 가지는데, 요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채소, 과일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아예 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이마트보다 싼 품목은 깐마늘(500g,5천원)과 무(한 개,1천원)정도. 배추는 한 통에 4천원으로 마트보다 비싸고, 양배추는 한 통에 4천500원으로 비슷하다.
주부 손명숙(48)씨는 "작년에는 만원 쥐고 시장에 나오면 채소 몇개는 너끈히 사갖고 갔는데 이제는 살게 없다"며 "한 번 오르면 내리지도 않으니까 그게 더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어 "배춧값이 너무 올라 올해 김장을 작년의 절반정도만 했는데 내년 봄에도 이가격이 계속 이어진다면 김치도 굶어야 할 판"이라고 풀이 죽었다.
▲ 신선어개는 어획량 급감으로 공급량이 부족해 내년이 되면 국산 가격은 더 오를 전망이다.
생선가게는 공급이 부족해 좌판마저 휑했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정 모(남. 43세)씨는 "오징어고 고등어고 물건이 없다. 지금 내놓은 물건들은 작년 같았으면 시장에 나올 게 아니라 공장으로 들어갔을 것들"이라고 말했다.
오징어 2미에 4천원, 고등어 한 손은 3천원. 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소리다. 좋은 물건이 있긴 하지만 비싸서 재래시장에서 쉽게 팔리지 않는다.
◆ 폭등 원인은 '이상기후'.. 정부대책 약발 먹힐까?
마트와 시장에서 만난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이상기후'를 가격폭등 원인으로 꼽았다. 올봄 발생한 저온현상과 여름철 잦은 비 때문에 농작물 작황이 좋지 않아 물가가 올랐다는 정부 설명과 같다.
수산물 가격 상승 원인도 이상기후에 있다. 고등어는 올해 연근해 저수온 현상으로 어획량이 급감했다. 동해에서 잡히는 오징어의 어황 역시 줄었다. 올 들어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잡힌 오징어는 4천900여 톤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 8천100여 톤보다 40%가량 급감했다. 지난 5월부터 동해 연안에 냉수대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생선가게 주인 정 씨는 "고등어는 가을 한 철에 잡아 1년 내내 파는데 올해 흉작이라 내년이 되면 더 비싸질 것"이라며 "싼 거 찾으려면 수입산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좌판에서 생물 오징어 1미를 구입한 정 모(여. 60세)씨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원 자리 네 장을 꺼내 주인에게 건네며 "돈 없는 사람들은 먹지도 말란 이야기지.서민들 밥상이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정부가 뭘 한다고 하니까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긴 숨만 토해냈다.
정부는 이달 초 신선식품 물가를 잡기 위해 ▲수입산 고등어 관세 철폐 ▲마늘·배추·무 추가 공급량 확보 ▲농산물 수입관세를 50%→10%로 인하 ▲농산물 직거래 시장 확보 등 1000억원 가량의 예산을 추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심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