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들이 친환경 아파트 배달 거절한 이유?
물이 흐르고 주변엔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교외의 전원풍경이 아니다. 정원 등의 공간을 마련한 이른바 친환경 아파트들의 모습이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행복한 보금자리리를 찾아 너도나도 친환경 아파트들을 찾고 있다.
하지만 정작 친환경 아파트 입주자들에겐 엉뚱한 고민이 생겼다. 정원이나 차량통행금지구역 때문에 택배차량이 들어오지 못해 택배를 받지 못하게 된 것.
온라인 마켓을 이용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친환경 아파트 입주민들의 고민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 “택배회사들이 어떻게 물건을 배달 안할 수 있느냐”
경기도 남양주시 부평리의 한 친환경 아파트에 사는 이 모(여.33세)씨는 얼마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온라인 마켓에서 구입한 물품이 한 주가 지나도록 오지 않았던 것.
이 씨는 “수업에 필요한 물건인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확인해 보니 남양주 진접읍 오남지구의 택배회사들이 우리 아파트에 물건을 배달 안 하기로 했다더라”며 기막혀 했다.
이 씨는 당장 며칠 후 있을 수업 때문에 직접 차를 몰고 물품사업소까지 가서 물건을 수령해올 수밖에 없었다.
“30km를 운전해서 갔다 왔다. 택배회사들이 어떻게 담합해서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씨가 입주한 아파트는 입주를 시작한 지 6달 밖에 안 돼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주민들은 온라인 쇼핑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회사의 담합은 고객의 편의를 완전 무시한 횡포"라고 이 씨는 분개했다.
◆ “손수레로 물건 나를 사람은 없다”
택배회사들은 왜 이 씨의 아파트에 물건을 배달하지 않게 됐을까.
이 씨의 아파트는 정원 등이 있는 친환경 아파트여서 차량이 진입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문제의 시작. 이 씨 아파트에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기사들은 정문에서 물건을 내린 후 손수레로 물건을 운반해야 했다.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면 되지만 택배회사의 차량은 높이 제한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택배기사들의 불만도 폭발했다.
“(수레로 물건을 배달하면서) 비 맞고 황사 맞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해진다. 어느 한 손님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다른 친환경 아파트들은 차량진입제한을 풀었는데 여기만 손수레로 배달하느라 다른 곳에서 독촉이 빗발친다”
“빠른 배송도 문제지만 택배차량이 종종 절도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차량이 가급적이면 가까운 곳에 있어야 안전하다”
“택배기사들이 대부분이 지입기사(자신의 차량을 이용하는 일종의 자영업)인데 그런식으로 한 곳에서 시간을 오래 끌면 적자를 면할 수가 없다”
CJ택배 남양주 대리점 대표인 김정환씨는 “택배기사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서 다들 이쪽 구역에서 일을 안 하려고 한다”며 “해당구역 기사가 그만두고 또 겨우 구하고 그러면서 대리점 운영까지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남양주시 진접 오남지구를 관장하는 7개 택배회사들이 이 씨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단지 내 도로를 이용하지 못하면 물품을 넣기 어려우니 차량진입제한을 풀어달라”고 공문을 보낸 것.
그러나 아파트 입주자들은 택배회사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입주자 대표인 남모 씨는 “택배를 접수하면 배달의 의무가 생기는 것 아니냐”며 “그동안 수레를 이용해 배달해주다가 갑자기 못 하겠다고 하니 난감하다”고 입장을 전했다.
남 씨는 “택배회사가 좀더 작은 차량을 이용하면 지하주차장을 통해 어디든 물건배달이 가능하다. 우체국은 계속 배달해주고 있는데 다른 업체들은 왜 안 된다는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 입주민 대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
친환경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입주자들과 택배업체들의 극한 대립.
지금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된 상황이며, 입주자들은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말한다.
이 씨의 아파트를 담당하는 한 택배업체 대표는 “안 그래도 협의를 위해 그곳에 찾아가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며 “양측이 양보하면 일이 해결될 것도 같은데 서로의 입장을 안 굽히는 것이 문제”라며 답답해했다.
파주시청 민원센터의 손일성 팀장은 “우리도 시민들의 불편을 처리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했다”며 “법적인 부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어떤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양측이 원만한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진단했다.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찾아온 친환경 아파트.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에 주민들과 택배업체의 다툼 소리만 커지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서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