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공포 조장됐다? WHO 사기설 '솔솔'

치사율 독감 수준…너도나도 백신 구입에 제약사만 '돈방석'

2011-01-04     윤주애 기자

올 겨울 신종플루를 포함한 독감환자가 유행 기준을 넘었으며, 관련 사망자도 3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유행 뒤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뿐, 2009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종플루 공포'는 재현되지 않고 있다. 신종플루가 독감에 비해 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2009~2010년의 신종플루 소동은 소비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해 제약회사들의 배만 불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보건의료기구(WHO)가 신종플루와 관련해 전염병 경보 최상위 6단계를 발령하기까지 불과 2개월이 걸리지 않았고, 치사율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터무니없이 많은 백신을 구입하는 바람에 제약회사들의 배만 불렸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부랴부랴 백신을 만들면서 안전성 및 유효성 검토가 미진한 제품이 시판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회 접종만으로 면역력이 생기는 백신이 뒤늦게 출시됐고, 지난해 8월 신종플루 대유행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면서 미처 사용하지도 않고 폐기될 백신이 산더미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 신종플루 감염 속출…치사율 독감 수준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지난달 27일 유럽과 미국 등 북반구 국가에서 신종플루가 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0월 이후 영국에서 신종플루로 24명, 계절성 독감으로 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뿐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도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늘어났다. 지난 3달 동안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영국 24명을 비롯해 이집트 51명, 스리랑카 22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돼지한테만 전염된다던 독감 바이러스가 변종돼 사람에게도 감염된다는 사실은 지난해 4월24일 WHO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 새롭게 발견된 이 바이러스를 '신종플루'로 통칭하기로 했으며, 감염 및 사망자 집계를 통해 치명률을 예측했다.

질병관리본부도 지난해 처음으로 신종플루 사망자 데이터를 냈고, 국내 전염병 위기단계를 '관심'으로 하향조정한 올해 3월까지 치명률을 조사했다. 그러나 신종플루가 일반 계절독감과 유사한 모양새를 보이자 더 이상 통계자료를 만들지 않고 있다.

다만 매주 인플루엔자 의심환자 관련 데이터를 내고 있어 최근 독감 유행시즌을 타고 신종플루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은 지난해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 외래환자 1000명당 14.6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라며 "이 중 신종플루 의심환자가 10명 중 9명꼴"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종플루는 더 이상 새로운 바이러스가 아닐뿐더러 일반 독감과 비슷하기 때문에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제외하면 며칠 앓다가 자연스럽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 "WHO 대유행 선언은 사기"

세계적으로 신종플루 사망자는 지난 8월까지 1만7000여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계절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25만~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수십만명이 신종플루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던 가상시나리오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1년 전부터 WHO의 신종플루 대유행 선언이 여론의 압력과 제약사들의 로비에 의한 것인지 의혹이 제기됐다.

볼프강 보다르크 유럽평의회(PACE) 보건분과위원장은 지난해 1월11일 한 인터뷰에서 '신종플루 대유행 선언은 사기'라고 주장했다. 유럽평의회는 47개 유럽국가 정부의 협의기구다.

보다르크 위원장은 신종플루가 일반적인 독감일 뿐 사망률도 10분의1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WHO가 지난해 6월11일 신종플루 대유행을 선언한 것은 백신 장사로 '잭팟'을 터뜨리겠다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꾸민 음모라고 주장했다.

보다르크 위원장은 "신종플루 사망자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적은데도 제약사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WHO 관계자들이 신종플루 공포를 조장한 것은 '금세기 최대의 보건의료계 사기'"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보다르크 위원장의 폭탄 발언 이후 2주일 만에 열린 청문회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유럽회의 내 유럽연합(EU) 인권 감시단체는 청문회를 통해 WHO가 제약회사들로부터 돈을 받는 등 이해관계가 있는 전문가들에 너무 많은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단지 신종 바이러스일 뿐, 일반 독감보다 치명적이지 않은데도 불구 '감염성이 높다'는 이유로 대유행이 선언됐다는 지적이다.

의학아카데미 회원 마르크 장틸리니 교수도 프랑스 잡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의 인터뷰에서 신종플루 공포를 '플루포비아'로 폄하했다. 장틸리니 교수는 신종플루 사망자 수가 계절 독감으로 인한 연평균 사망자 수(30만명)에 훨씬 못 미친다고 강조했다. 말라리아의 경우 후진국병이란 편견으로 무관심 속에 연간 100만 명씩 희생자를 내고 있으나, 신종플루가 잘 사는 나라가 모인 북반구에서 사망자를 내면서 유독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영국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도 비영리조사단체인 언론조사국(BIJ)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WHO 신종플루 관련 가이드라인 작성에 참여한 과학자 3명이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제품명 타미플루), GSK(리렌자)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지난해 6월4일 유럽의회를 통해 폭로했다.

◆ 신종플루 공포가 조작됐다는 의혹

이런 의혹들은 WHO의 발표들이 다소 격앙되고 막연한 불안심리를 조장하기에 충분했다는 심증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4월29일 미국서 첫 사망자가 발생하자 WHO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며 신종플루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멕시코, 미국, 유럽, 중동 등지에서 감염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5일이 지나기도 전에 WHO는 대유행이 우려된다고 발언한 이후 전염병 경보 최상위 6단계로 격상시켰다. 당시 74개국 141명이 신종플루에 감염,사망한 뒤였다.

국내에서도 WHO의 움직임에 따라 지난해 5월 첫 감염자 발견 이후 11월3일 전염병 위기단계 최상위인 '심각'을 발령했다. 앞서 WHO의 신종플루 대유행 선언이 있었던 6월11일에는 백신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27일에는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 의해 '신종플루가 대유행할 경우 사망자가 2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복지부 내부문건이 공개되면서 공포심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비현실적인 가상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복지부의 해명에도 불구, 10~15만명이 신종플루로 병원에 입원하고 사망자만 1~2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문건은 소비자들의 공포 심리를 불러일으켰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종플루 대유행 선언으로 많은 국가가 소수의 제약회사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 이들 제약사들이 돈방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타미플루를 생산한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부도 직전에 몰렸다가 신종플루 백신으로 벌떡 일어났다.  외국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와 GSK, 국내  녹십자도 신종플루 백신으로 잭팟을 터뜨렸다.

특히 녹십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신종플루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주가가 200% 이상 급등했고, 43년간 철옹성 같던 제약업계 순위 1위도 탈환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동아제약보다 앞섰다.

녹십자 측은 "WHO의 신종플루 대유행 선언 이후 4개월만에 백신 제조기술을 개발, 국내에 2700만 도우즈를 공급했다"며 "제약사의 음모론의 경우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신종플루 대유행 선언이 '사기'라는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WHO는 이를 극구 부인하며 대응이 적절했다고 자평하는 한편, 신종플루 '대유행'은 여전하다는 입장이다. 학자들간에도 의견은 엇갈린다. 신종플루가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과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자 WHO는 29명이 참여하는 전문가회의를 지난해 4월12일 열어 신종플루를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회의를 가졌다. 아울러 외부 전문가위원회는 WHO의 신종플루 대응 실태평가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초 최종 검토 보고서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