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부실책임부터 묻고 지원해야"

은행, 보험권 , 저축은행 공동계정 지원방침에 강력 반발

2011-01-07     임민희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예보기금 공동계정' 신설과 관련해 금융권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헤이)를 부축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금리 예금판매와 무리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으로 대규모 부실을 초래해온 저축은행을 살리기 위해 지금껏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도 모자라 또다시 타금융권의 예금보험기금(고객돈)까지 끌어다 쓰는 것은 오히려 금융회사의 부실을 조장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한다는 지적이다.

저축은행을 제외한 은행․보험 등 5개 금융권은 정부의 '공동계정' 추진에 강력반발하고 있지만 예금보험공사(사장 이승우)와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는 금융권과 최대한 의견조율을 거쳐 1월 중 국회입법 통과를 목표로 삼고 있어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지주(회장 이팔성)와 하나금융지주(회장 김승유) 등 금융지주사들이 저축은행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어 저축은행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전 금융권이 총대를 매는 양상이다.  
 
저축은행 부실사고는 금융권 공동책임?
  
정부는 저축은행 부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계정’은 불가피한 선택이며 금융시장안정과 ‘예금자보호’라는 예보의 설립취지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반대하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예보는 금융회사 도산시 예금자들의 돈을 보호할 목적으로 각 업권별로 일정부분의 예금보험기금을 적립해 놓는다. 기금은 은행․생명보험․손해보험․금융투자․종금․저축은행 등 6개 금융권역별 계정으로 운용된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PF 부실문제 등으로 위험률이 높아지면서 저축은행 계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정부는 '예보기금 공동계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시 말해, 각 계정에서 50%의 기금을 각출, 공동계정을 만들어 부실 저축은행 연쇄 도산 등 비상상황에 쓰겠다는 것이다. 

앞서 예보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공동계정' 추진 의사를 밝힌데 이어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 등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본격화됐다.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과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예보기금 내에 권역별로 엄격히 계정을 구분했는데 이는 회계구분을 위한 것일 뿐 '공동계정'을 통해 저축은행과 같은 부실한 업권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예보의 설립취지에 맞다"며 "저축은행 부실문제가 발생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결해왔는데 이는 납세자부담 금지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공동계정'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03년 이후 도산한 저축은행이 16개에 달하는데 '공동계정'을 도입하면 이러한 위험률을 낮출 수 있다"며 "금융권에서 반대가 심해 기존 기금은 놔두고 새로 들어오는 권역별 예보기금의 50%를 공동계정에 적립하는 수정안을 제시해 은행, 보험권 등과 논의 중인데 설득이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주용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지난 4일 언론을 통해 "공동계정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도입에 적극 찬성했다.

"저축은행 전용계정에 돈을 내라고?" 은행․보험업계 반발 

하지만 금융위의 설명과 달리 금융권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과 이우철 생명보험협회장 등 은행․보험업계 대표들은 '공동계정'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생명보험협회 한 관계자는 "공동계정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게 보험사들의 입장"이라며 "금융위가 제시한 수정안도 적절치 못한 것 같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말이 공동계정이지 저축은행 전용쌈지돈 계정"이라며 "이미 5개 업권에서 저축은행에 빌려준 3조2천억원도 갚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저축은행의 부실을 은행 예금자들의 돈으로 메꾼다는 발상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예금자들이 은행에 맡기는 예․적금의 0.08%가 예보기금으로 적립이 되고 있는데 이는 거래고객을 위한 일종의 보험이지만 '공동계정'이 도입될 경우 부담자와 수혜자가 불일치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저축은행들이 은행보다 고금리로 수신을 유치해 규모를 키우고 부동산 PF 등 무분별한 투자로 부실, 도산위기에 처한 것은 저축은행과 금융당국의 허술한 감독 때문임에도 이 책임을 타금융권에 전가하는 것은 예금자보호법의 근간을 흔들고 모럴헤저드를 부추긴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은행․보험업계는 저축은행이 이미 빌려간 3조 2천억원에 대한 상환 및 부실문제 해결을 위한 자구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저축은행의 부실을 올바로 감독하지 못한 정부 역시 일정부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내비쳤다. 뿐만아니라 부실 저축은행 오너 및 등기임원들에게 엄중한 문책과 민형사상 책임을 먼저 묻고 그 후에 저축은행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순리라는 의견이 대세다. 

최근 취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예보기금 공동계정 도입에 대해 "모든 방안을 심도있게 고민하겠다"고 밝혔지만 1월 중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어서 금융권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금융지주사 저축은행 인수 시사, 해법될까? 

한편, 저축은행 부실 문제와 관련 금융지주사들이 인수의사를 밝히면서 또 다른 해법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 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저축은행 문제해결에 금융권 전체가 나서서 함께 동참해 달라"는 발언 직후 이팔성 우리지주 화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축은행 1~2곳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승유 하나지주 회장도 "거대 금융그룹도 금융시스템 유지를 위한 노력에 관심을 둬야 한다"며 우량 저축은행을 인수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KB금융지주(회장 어윤대) 측은 "국내 금융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캐피탈사가 없는데 향후 캐피탈사 인수를 통해 서민금융업의 진출을 검토 중"이라며 "저축은행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만큼 지주에서도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지주(회장 류시열) 측은 "저축은행 인수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 일각에서는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공동계정'과 '금융지주사의 저축은행 인수' 등을 유도하는 게 맞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의 뇌관으로 급부상한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총체적인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의 저축은행 인수 방안은 김석동 금융위원장 취임이전부터 추진해 왔던 사안이며 김 위원장이 취임한 뒤 구체화 된 것 뿐"이라고 전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컨슈머파이낸스=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