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예산공방 후폭풍…글로벌시티 꿈 ‘와르르’
무상급식 여부를 놓고 벌어진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간 갈등으로 시 행정이 마비상태에 빠질 우려 마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의회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 오던 ‘오세훈 2기 서울시’가 결국 2011년도 시 예산 처리를 놓고 정면으로 ‘치킨게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시의회는 서울시가 친환경 무상급식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시에서 책정해놓은 상당수 항목이 빠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오 시장이 공포를 거부하면서 시의회는 의장 명의로 예산안을 공포 처리했다.서울시는 공포된 예산의 집행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통과된 서울시 예산은 20조5천850억원으로 당초 서울시가 제출한 20조6천107억보다 257억원 줄어든 규모다. 크게 보면 무상급식, 장애인 자립지원 사업 등 복지예산 3천707억원이 신설·증액된 반면 서해뱃길사업, 한강예술섬 사업 등의 예산은 3천964억원 삭감됐다.
서울시 대변인실은 이번 의장 직권공포 추진에 여러 문제가 있다며 집행 거부의 변을 언론에 설명했으나, 오히려 이 같은 법적 하자 여부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우려가 연초부터 등장하고 있다. 즉 위법성 논란은 후에 사법부에서 명쾌히 가릴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지속될 예산 집행 스톱의 ‘진공 상황’이 빨아들일 서울시민의 유무형의 사실적 피해가 결코 적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 시의회, 전시와 토목 ‘잡으려다’ 실질적 복지 ‘킬’
서울시측이 당초 행정집행에 쓰고 싶어 시의회에 검토를 요청했다가 삭감당한 부분은 일부 언론이 ‘토목·전시 예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3천964억원 중 상당 부분은 이렇게 평가되기 애매한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서울시민들의 ‘니즈(Needs)’에 충실한 예산신청계획이었지만 삭감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물론 복지 분야에 대한 지출 증대를 요구하는 서울시의회에도 명분이 있고 공익적 측면에서 고민을 한 끝에 나온 판단이라는 점에는 큰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없다. 하지만 의견이 다른 집행부(시)와의 갈등 국면에서 ‘보복성 삭감 의혹’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일부 항목 삭감 추진이 뒷말을 낳고 있다.
아울러, 정작 민주당 등 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서울시의회가 추구하는 복지 강화라는 명분과 이로 인한 예산 싸움의 결과물이 결국에는 서울시가 그나마 그려오고 시민들이 갈구해온 복지 청사진에마저 상처를 낼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만 살펴본다고 해도, 우선 ‘서울형 그물망 복지통합망 구축’의 경우 시에서 500억원을 신청했다가 전액 삭감됐다. 서울장학재단 관련은 일부 삭감됐고, ‘홀로 사는 어르신 안심 프로젝트’ 추진 필요액 626억원도 전액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서울형 복지통합망의 경우 그야말로 저인망 그물처럼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구상이다. 복지 관련 서비스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서울시측 판단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16일 개설한 ‘서울형 그물망복지센터’에는 100일간 약 2천여건에 달하는 복지민원이 접수됐다는 게 시 일각의 조사결과다. 하루 20건 꼴로 복지민원이 쏟아진 셈이므로, 역시 서울시민들이 시에 바라는 가장 큰 것은 복지서비스였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같은 서비스를 강화, 확고히 완성하기 위한 예산이 전액 깎인 것.
더욱이 ‘독거노인’으로도 불리는 홀로 사는 어르신를 돕기 위한 프로젝트 예산을 삭감한 일도 역시 복지에 주안점을 두고 무상급식 등을 추진하겠다는 시의회가 조치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대목을 놓고는 이번 예산 전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복지 수수께끼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예산 전쟁의 ‘난센스’는 다름 아닌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급식지원’이 이번 시의회의 예산 일부 항목 삭감 및 신규 항목 증액 조치로 인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는 논란이 붙은 데 있다.
서울시측 주장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해 말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시가 저소득층 학생들의 급식 지원비로 편성한 예산 278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당초 서울시는 시교육청이 소득하위 11%까지 지원하고 있던 저소득층 급식 예산에 시 예산으로 5%를 추가해 하위 16%까지 급식지원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고 이 추가 5%에 해당하는 요청 금액이 278억원인데 시의회에 의해 깎였다는 것.
물론, 시의회가 급식지원비를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시의회는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 695억원을 편성하는 동시에 저소득층 중학생 및 고교생 급식 지원비로 163억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서울시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시의회가 무상급식 조례를 공포하면서 학교급식지원 조례가 자동으로 폐지돼 급식비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졌으므로 서울시 행정이 법규 등을 무시하고 진행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란이 불거진 셈이다.
◆ 국제화∙차세대 번영 기초 포기할 판 ‘기업도 하는 문화교류 서울시는 못한다?’
또 하나 논란이 되는 분야는 서울시가 오세훈 1기를 통해 추진, 움을 틔운 국제화 사업이 이번 오세훈 2기를 통해 제대로 잎을 내놓기 전에 예산 전쟁의 한파로 동사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서울시의 국제화 추진에 대해서는 사실 논란이 없지 않았다. 서울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후원하는 일이나, 국제 홍보에 쓰는 노력(예산적, 물적이나 인적 투입)이 지나치므로 이는 결국 과도한 홍보성 지출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물론 이 중에 어느 정도는 타당하고 서울시측이 수용해야 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홍보성 예산 삭감이라는 명분에 해외 이미지 제고 사업이 모두 직격탄을 맞는 점은 문제가 크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가 몽골 울란바토르에 서울숲을 조성하거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서울거리를 조성하려는 데 서울시의회가 제동을 건 것은 국가와 수도의 이미지를 제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미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이라는 거시적 과제를 미시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 몽골에 숲 조성 등을 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 초기에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자원외교를 강조하면서 중앙아시아 국가 외교에 공을 들인 점은 우리나라의 정계 및 재계가 어떤 구상 하에 움직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원외교’라는 백년지계에 국가적 차원이나 민간경제주체들이 분투하고 있는 과정에 서울시에서만 예산 문제로 인해 상대방에 ‘꺼냈던 말을 거둬들여야 하는’ 지경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몽골과 우즈벡 등 이들 국가는 향후 한국 기업들의 진출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서울시는 지자체로서는 보기 드물게 중국 베이징에 서울시 소재 중소기업들의 무역 및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관련 지원조직을 내보내는 등 일찍부터 노력을 아끼지 않아 왔다. 시 1급 공무원으로 퇴임, 현재는 민선 서초구청장으로 일하고 있는 진익철 청장이 한때 베이징에 파견근무를 한 바 있는 등 서울시는 고위공직자들까지 이 같은 국제적 교류 확대와 실질적 반사이익 수확에 일찍부터 매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몽골과 중앙아시아로까지 뻗어나가려는 상황이 이번에 좌절된 셈이다. 간접적인 피해 추산이지만, 서울시는 지난 한해 3천만달러의 수출추진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를 통해 약 300여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치가 이번 서울시 국제 협력 예산 감액으로 물거품이 되는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는 북한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어온 과거 공산권 국가이며 몽골 같은 경우는 북한이 경제난으로 몽고 주재 외교공관을 철수하려 하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바 있을 정도로 의리를 중시하는 나라다.
이런 터에 서울시의 말 바꾸기가 가져오게 될 부정적 이미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인 한국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질 소지도 다분해 국익 차원에서도 재고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 각종 송사 봇물…시 재정 타격 우려도
아울러 이번 예산 전쟁으로 인해 여러 항목에서 지장을 받거나 사업을 중단하게 됨으로써, 행정 집행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각종 소송에 말려들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버스운송사업 재정지원도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장기미이행 도시계획 시설을 매수청구할 재원 확보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 구성 문제도 주저앉을 판이다.
이렇게 여러 사업이 좌초 내지 차질 우려를 겪게 되면서, 각종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근래 행정소송 및 행정집행과 관련된 민사소송 경향을 보면, 서울시 등 행정기관이 계약 등을 뒤엎거나 하는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복잡한 소송에 직면하는 일을 면하기 어렵다.
2007년의 사례를 보면,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지하철 5~8호선 148개 역사에 상가시설을 개발하는 ‘S-비즈’의 우선협상대상자로 GS리테일을 선정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백지화한 문제가 법정 공방으로 비화(서울동부지법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확인 가처분 제기)된 바 있다.
서울시가 바로 피고로 제소된 사례는 아니나, 2005년 사례 중에는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마을버스업체들이 교통카드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교통카드 업체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가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교통카드업체 K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해 피해를 봤다”며 마을버스 업체 90여곳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9억6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러한 사정을 이번에 서울시가 버스운송사업 지원 곤란으로 업체에 피해를 주는 경우에 대입해 보면, 서울시는 바로 운송업체들에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 구청장들 호소에 ‘일단은 실집행예산 운용’…고민만 깊어가
이런 상황에 대해 가장 애가 타는 이들은 서울시 행정의 가장 일선에 있고 피부로 문제를 느끼는 구청장들이다. 이들은 급기야 신년 들어 구청장협의회 명의로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다툼을 그만 해 달라는 호소를 내기에 이르렀다. 실질적으로 서울시민을 위해 일해 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문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오 시장과 서울시로서는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다. 고육지책으로 서울시는 시의회가 증액한 부분은 집행하지 않고 ‘실집행예산’을 편성해 운용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시장의 동의 없이 증액한 3천700억여원은 물론, 관련법상 올해 예산에 반드시 편성돼야 하지만 삭감된 서해뱃길 채무부담금 30억원을 포기, ‘토목 예산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방편만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상처들이 생기는 일을 막을 수 없으며, 대법원에 이 예산 증액 등의 위법성 판단을 받아낸 후에도 장기간 치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 오 시장은 재선으로 2기 행정을 시작한지 100일여쯤 어느 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그동안 이렇게 하면 저렇게 갈 수 있겠다고 하는 머릿 속의 그림이 이제야 완성됐는데 막상 시의회에서 여소야대라는 복병을 만났다는 것.
여소야대 시의회와 원만히 합의를 못끌어냈다는 점에서 ‘정치인 오세훈’으로서는 아쉽지만, 그로인해 ‘행정가 오세훈’이 입는 상처와 1천만 서울시민이 입을 피해가 만만찮다는 점은 지방자치제 부활 20주년을 맞은 지금, 여러모로 생각할 점을 던져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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