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매력적인 마이너리티 스피릿! 뮤지컬 ‘엣지스(Edges)’의 최재웅
유난히 과묵하고 진중한 분위기 탓에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 최재웅에게 2010년은 유독 관객과의 스킨십이 잦았던 해였다. 객석과 소통하는 작품이 무려 3편. 뮤지컬 ‘헤드윅’을 시작으로 ‘트라이앵글’을 거쳐 연말에 막이 오른 ‘엣지스(변정주 연출)’까지. 특히 ‘엣지스’는 관객의 리액션이 극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어 최재웅의 만개한 맨투맨 스킬(?)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을 담아낸 15곡의 넘버에 각각의 에피소드를 부여한 드라마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 ‘엣지스’에는 최재웅 외에도 강필석, 최유하, 오소연 등이 출연한다. 4명의 배우는 실제 자신의 모습으로 관객과 대화를 나누며 진행을 하다가 넘버를 부를 땐 노래 속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엣지스’로 관객과 소통에 정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는 최재웅을 만났다.
- ‘엣지스’를 보노라면 라디오 공개 방송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있고, 사연이 있고, 노래가 있고... 심지어는 퀴즈랑 선물도 있고요.
“라디오처럼 편한 느낌을 받으셨다면 좋은 일이죠. 이 작품은 관객이 편하게 보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원래는 노래만 있는 송-쓰루(song-through) 뮤지컬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드라마를 중시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각각의 노래가사를 살려서 다양한 에피소드로 만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조금은 색다른 형식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 연출부와 배우들의 생각이었죠. 거의 공동창작 개념이라 할 수 있어요.”
- 최재웅씨 성격이 그다지 넉살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죠. 그런데 제가 4명 중에 제일 까불면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웃음) 저나 필석이 형이나 분위기 잡고 폼 잡는 걸 많이 했었는데.... 죽겠어요. 그나마 ‘트라이앵글’을 해서 좀 낫죠. 표현의 형식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더 편한 부분도 있고요.”
- 공연 시작 전부터 로비와 객석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건 제가 제안한 건데요. 이미 한번 인사를 나눈 것과 암전 후 다짜고짜 시작하는 것과는 엄청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무대와 객석 간에 벽을 허무는 사전 작업인 건데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요. 실제 본 공연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어떤 관객에게 주로 말을 거나요?
“공연장을 쓰윽 스캔해서 웃고 계신 관객에게 주로 대화를 시도하죠. 웃고 있다는 건 마음을 열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생각해서요. 근데 참 무표정인 분들이 많아요.”
- 무표정이라면 최재웅씨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웃음) 저는 최고죠. 지존이죠. (웃음) 이번에 느낀 게 뭐냐면 공연을 많이 보는 마니아 분들보다 공연을 가끔 보는 일반 관객 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쉽다는 거예요. 마니아 분들은 기존 공연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당황하세요. 공연이 2,30대나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주제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이야기해보자’인데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참여하는 분들은 그 위, 아래 세대예요. 그 시기를 겪은 분들이고 어린 관객에게는 그들의 미래이기 때문에 정서를 다 공유하시더라고요.”
- 회사가 지루한 직장인, 배우를 꿈꾸는 웨이터, 갓 사랑에 빠진 남자, 아픈 엄마가 안타까운 아들 등 누구나 겪게 되는 보편적인 상황들을 연기하는데 가장 공감 가는 상황은?
“필석이 형이랑 부르는 ‘Pretty sweet day’요. 유쾌하고 장난도 치면서 부르는 노랜데 옛날 친구 생각이 많이 나요. 제가 강동구에서만 25년을 살아서 길거리 지나다 어릴 적 친구와 가끔 마주치게 되는데 반가우면서도 쑥스러워서 아는 체는 못하겠더라고요. ‘Coasting’ 같은 경우는 가장 와 닿는 노래예요. 얼마나 많은 빈 말을 하며 살아가는지 새삼 느껴요.”
- 노래 부를 때마다 다른 캐릭터, 다른 감정에 급몰입을 해야 하는데 어렵지 않나요?
“데뷔작인 지하철 1호선 때부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일인 다역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이에요. 또 저는 ‘100% 배역에 몰입을 할 수는 없다’는 주의거든요. 배우와 역할이 반반씩 섞여야 더 멋진 캐릭터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고, 그런 점에서 볼 땐 편했어요.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는 성격이라 자신에게 당위성이 없으면 힘들어요. 최대한 집중을 하고는 있는데 어려운 부분이에요.”
- 배우 최재웅으로 극을 진행할 때 ‘야구 선수가 꿈이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긴 웨이브 머리가 어울리는 여자가 이상형이다. 글씨를 잘 쓴다, 실수를 잘 안한다, 팬들에게 가식적으로 대한 적이 있다’ 등등의 대사를 하는데 어디까지가 본인의 이야기인가요?
“중간중간 나오는 토크의 에피소드들은 다 연습 때 배우들이 했던 말이에요. 그걸 작가님들이 깔끔하게 정리 해주신 거죠.”
- 진짜 야구 선수가 꿈이란 말인가요?
“프로 야구는 못하죠. (웃음) 사회인 야구 리그가 있는데 거기서 주전으로 뛰고 싶은 거죠. 지금은 인터넷 리그에 있습니다. 야구단 이름은 ‘불방망이’, Fire bat 라고. (웃음) 정식으로 등록된 모임은 아니고요. 그냥 동네 친구들 몇 명하고 하는 건데 인터넷으로 ‘이번 주 언제 어디서 야구하실래요?’ 하고 대결 신청을 해서 맞으면 하는 거예요. (포지션은) 아무거나 다 합니다. 잘해서. (웃음)”
- 글씨도 정말 잘 쓰시고요?
“어마어마하게 잘 써요. (웃음). 어렸을 때 취미였어요. 신문 같은 데다 글씨 쓰는 거 좋아했거든요. 왜 그런 걸 좋아했나 몰라. (웃음)”
- 배우들, 스태프들과 많은 대화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네. 정말 많이 했어요. 다른 공연 같은 경우는 대본을 외우고 악보를 익히고 하는데 이거는 진짜 연출님 하고 작가님하고 배우들하고 연습실에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솔직해지려고 노력했고요. 그래서 노래에 가식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 동료 배우 분들 얘기 좀 해주세요. 이미지가 겹치는 (웃음) 강필석씨와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됐는데요.
“너무나 좋죠. 학교(한예종 97,98학번으로 1년 선후배 사이) 다닐 때도 친했거든요. 형은 굉장히 꼼꼼한 배우여서 좋아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당위성을 얻어야 하고 행동 하나 대사 하나에도 이유를 가지고 접근을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들과 너무 편하게 지내고. 음... 미, 미소가 예쁘기도 하고. 톰크루즈의 미소. (웃음) 예수님도 닮았고.”
- 최유하, 오소연. 두 여배우의 매력도 대단하던데요.
“특히나 이번 작품의 여배우들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남자들이 이야기를 많이 끌어간다면 여배우들은 노래를 너무 잘하죠. 유하 같은 경우는 진짜 웃기고 센스 있고요. 소연이는 쬐끄만데 밝고 야무져요. 좀 닫혀 있는 여배우들이 많은데, 얘들은 굉장히 열려 있고 유쾌해요. 실없는 농담을 해도 재밌어요.”
-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흔하다 할 수 있는데 ‘엣지스’만이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요?
“이런 주제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서 극을 했으면 훈계나 강요가 됐을 거예요. 근데 우리는 편한 분위기 속에서 그냥 공유해보자는 취지거든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니 느끼는 만큼만 가져가면 되죠. 마지막에 일반 시민들 인터뷰가 나오잖아요. 결혼하고 싶다, 살 빼고 싶다, 돈 벌고 싶다... 그걸 듣고 있으면 모자이크 미술처럼 조각조각난 고민들이 한 덩어리로 저한테 다가와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고 그런 게 다른 작품과 차별화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뭐야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적어도 다른 작품에는 없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극적인 재미가 아니라 가슴을 탕 치는 재미. 설명하기 힘든데 그런 묘한 재미가 있어요.”
과묵한 인터뷰이(interviewee)만큼 인터뷰어(interviewer)를 긴장시키는 존재도 없다. 최재웅도 그런 배우 중 한 명이다. 아니 한 명이었다. 본인은 기억 못할 테지만 지난 2008년 ‘미스터리 뮤지컬 후(WHO)’ 때 가졌던 잠깐의 인터뷰에서 그의 단답형의 대답으로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선 이번 인터뷰도 조금 걱정이 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마주한 그는 진지한 가운데 간간이 웃음으로 양념을 치는 매력적인 인터뷰이였다. 최재웅이란 배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제는 또 정극이 하고 싶다’고 말했던 최재웅은 ‘엣지스’를 끝내고 오는 2월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냉소적인 정치범 발렌틴 역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대통령 암살자(어쌔신), 천재 동성애자(쓰릴미), 트랜스젠더 로커(헤드윅) 등으로 관객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인기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비주류, 아웃사이더, 마이너리티의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포지션의 배우다. 관객들은 매혹적인 게릴라로 변신할 최재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뮤지컬 ‘엣지스’ : 1월 16일까지. 대학로 더 굿 씨어터)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조수현(공연 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