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집 없애면 함바집 비리가 사라져?
"아이고, '함바집'이 없어지면 공사장 인부들만 더 힘들어질 텐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때놈이 챙긴다더니, 애궂은 인부들만 생고생 하게 생겼네. 공사장 안에 식당이 있어야 밥 먹는 시간 아껴서 쉬거나 토막잠이라도 잘 수 있는데…"
과거 건설현장 관리직으로 몸 담았던 기자의 지인이 TV방송에서 나오는 일명 '함바 게이트' 사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TV에서는 일부 지자체가 함바집을 둘러싼 비리확대 방지를 위해 함바집 설치를 아예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함바집 문제가 이제서 '뉴스'가 된 것도 신기하다고 했다. 함바집 비리는 고래적부터 있어왔고 현장에선 '비밀'도 아닌 공공연한 '사실'인데 왜 뒤늦게 호들갑이냐는 뉘앙스다.
다만 대다수의 함바집들이 조직폭력배 등을 끼고 운영되고 있어 함부로 불평을 토하거나 손을 댈수없는 구조여서 일반인들에게는 '뉴스'라고 여겨지나보다 라고 스스로 해석을 덧붙였다.
함바집은 일제강점기 때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등에 있던 근로자 합숙소를 일컫는 일본어인 '함바'(はんば)에서 유래된 단어로 요즈음에는 '현장식당'으로 통한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함바집은 건설노동자에게 있어 단순한 식당이 아닌 휴식공간이다.
물론 공사현장 인근에 많은 식당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에는 함바집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외딴 지방 현장에는 함바집이 필수다.
대부분의 건설현장 근로자들은 새벽 일찍부터 작업을 수행해 야근까지도 감수해야하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놓여 있다.
새벽 인력시장을 통해 수혈되는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에는 상용직보다 몇 시간씩은 더 일찍 일어나야만 그날 하루의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 더욱이 하루 종일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야하는 까닭에 누구보다도 휴식이 필요한 게 그들이다.
때문에 공사장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함바집은 자연스레 그들의 전용식당 역할은 물론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곤 한다. 한여름에는 땡볕을 피할 수 있고, 한겨울에는 한파를 피할 수 있는데다가 공사장 한켠에 자리 잡고 있어 식사시간을 아껴 토막잠을 자기에는 함바집이 안성맞춤이다. 근근한 수다(?)를 떨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다.
함바집 비리를 없애기위해 함바집을 아예 없애겠다는 발상이 참으로 순진하다. 교통사고를 잡기위해 자동차를 없애겠다는 의식과 다를 바 없다. 함바집을 없애면 우선 건설노동자에게는 식대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함바집이 없어질 경우 인근 일반음식점을 이용해야하는데, 함바집 한 끼 식사가격이 통상적으로 4천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외부식당의 가격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장관계자가 해당 업주와의 가격조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이번엔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비리가 아니라 공사현장 관계자와 인근 음식점주가 끈끈한 연을 맺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해도 저렇게 해도 완벽하게 깨끗한 시스템을 만들수는 없다. 그걸 운영하는 깨끗한 룰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만 남은 셈이다. 함바집의 존재 이유가 분명한 이상 없애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봉책이다. 이런 경우에 딱맞는 속담이 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고 우리 조상들은 일찌감치 일갈했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류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