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박태환의 한겨울 바람 싸움

2011-01-18     양우람 기자

‘은반의 요정’ 김연아가 피겨의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로 성장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천부적 재능이나 남다른 열정과 함께 많은 이들은 라이벌인 아사다마오의 존재를 꼽는다.

실제 김연아는 한 인터뷰에서 정신적으로 헤이해질 때마다 아사다마오를 떠올린다고 밝힌바 있다. 떨쳐냈다 싶으면 뒤에 서있고 다잡았다 싶으면 저만치 달아나는 라이벌의 존재는 결국 서로를 자극해 강렬한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무대를 은반에서 가전업계로 옮기면 올해부터 김연아의 라이벌은 지난해 아시아 재패로 건재함을 과시한 ‘마린보이’ 박태환이 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사의 에어컨 브랜드 하우젠 2011년 형을 선보이고 에어컨을 비롯한 생활 가전 분야에서의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신형 에어컨의 컨셉을 ‘스마트’로 잡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전기료를 절감하고 청정기능을 강화해 계절에 구애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네트워크 기능을 채택해 외부에서도 에어컨을 크고 켤 수 있는 ‘똑똑함’까지 갖췄다고 전했다.

이어 공개된 TV광고에서는 지난해 보다 한층 생기 넘치는 표정의 김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는 발랄한 목소리로 “Don't worry, Be smart”를 흥얼거리며 삼성전자의 신형 에어컨이 여름철에만 쓰는 제품이 아니라 4계절 내내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설명회의 말미에 삼성전자 홍창환 부사장은 2015년까지 생활가전 분야에서 300억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혀 선두업체 LG전자에 대한 경쟁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곧바로 LG전자의 반격이 시작됐다. 다음날 LG전자도 신형 에어컨 휘센 발표회를 갖고 세계 최초 ‘4차원 입체냉방’ 방식을 도입한 제품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LG전자에 따르면 새 제품은 본체에서 분리 가능한 ‘휘센 미니’로 빠르고 효율적인 냉방과 청정제습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설악산의 바람을 담은 ‘숲속모드’ 적용으로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감성냉방을 실현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 LG전자가 공개한 신형 에어컨의 사양보다 참석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휘센의 새 모델 박태환의 존재였다. 행사장을 직접 찾은 박태환은 자신이 목에건 금메달을 빗대 “휘센 에어컨에서 금빛 바람을 기대해 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공개된 TV 광고에는 박태환이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시원스레 금빛 물살을 가르는 장면이 등장했다. 메인 카피는 “나는 대한민국의 바람입니다. 1등바람 1등에어컨 LG 휘센.” 여기에는 현재 국내시장에서 삼성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LG전자의 간절한 심정이 묻어난다.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다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해 에어컨 시장은 삼성전자의 약진과 LG전자의 정체로 요약할 수 있다. LG전자는 여전히 40% 이상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

이러한 결과는 이미 기술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진 것은 물론 삼성전자가 올해까지 3년 연속 광고모델로 결정한 ‘김연아의 힘’이 작용한 까닭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삼성전자가 에어컨으로 올린 실적은 LG전자 관련 사업부에 위기감까지 불러 일으켰다는 전언이다. 에어컨 사업부 한 임원은 “김연아를 응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됐을 정도”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LG전자가 김연아와 필적할 만한 스포츠 영웅 박태환을 새 모델로 삼고 시장점유율을 다소 상징적으로 ‘절반’으로 못 밖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지금껏 여유를 부리던 LG가 삼성을 비로소 ‘라이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세인들의 관심은 김연아와 아사다마오가 그러했듯 서로에 대한 견제와 자극 속에 LG와 삼성이 펼칠 흥미진진한 승부로 모아지고 있다. 다행이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기를 가슴에 달고 있어 누구 하나가 쓰러질까 조마조마할 필요는 없다.

보급률 20%에 연간 200만대를 바라보는 에어컨 시장에서 이들이 품질과 가격, AS등을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보다 쾌적해질 것이다.

다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빙판에서건 시장에서건 경쟁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신형 에어컨 발표회를 전후해서 들리는 얘기로는 양측이 개발인력을 뺏고 빼앗기는 무리한 스카웃전을 벌였다고 한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삼성과 LG가 그동안 공공기관에 에어컨, TV 등을 납품하며 가격 담합을 벌였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필요 이상의 경쟁과 교감(?)이 발생한 경우로 라이벌 구도의 ‘좋지 않은 예’로 남을 것이다. 관중들은 이제 두 라이벌이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펼치는 정점에 선 연기를 보고 싶어 한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양우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