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칼'인사로 SK는 지금'전쟁'모드

'물갈이' 인사 뒤 부서마다 올해 목표 20~30% 상향 조정

2011-01-19     김현준 기자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그림의 틀, 즉 프레임을 바꿔야 하고, 끊임없는 혁신과 성장을 이뤄야 한다"

최태원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던진 신묘년 화두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일까. 최 회장의 '20% 물갈이 용병술'이 초기효과를 톡톡히 보며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24일 단행된 SK그룹 인사에서 105명 규모의 세대교체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뾰족한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정체상태에 빠진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대대적인 물갈이로 보인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이번 조직개편에서 CEO까지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정만원 사장이 물러나고 하성민 총괄사장과 서진우 플랫폼사장의 '공동대표체제'를 구축했다.

최 회장이 이처럼 파격적인 인사 보따리를 풀자 정만원 전 사장 등 일부 인사들이 최 회장을 찾아가 경질 배경과 이유까지 물으며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요즘 대내외적으로 잘 안 풀리는 최 회장이 독한 마음을 먹고 칼을 빼든 것 아니냐"고 풀이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재계 2세들 가운데 가장 먼저 그룹 수장에 오른 인물이다. 40대 초반에 재계 3위 그룹의 총수가 된 그에 대해 당시 재계에서는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빨리 올라선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이런 시선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 회장은 다각도로 그룹의 정체성을 모색했고 특히 중국을 비롯한 해외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주력 계열사들이 각종 악재에 휩싸이고 공들이던 해외사업마저 적신호가 켜지자 최 회장이 '다른 칼'을 빼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 회장이 이번에 빼든 칼은 그러나 여간 날카롭지 않다.

가장 관심을 끄는 SK텔레콤의 경우 임원 및 팀장 20%가 물갈이되었고 경질된 팀장들은 후배 팀장 밑에서 일을 하거나 전혀 다른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까지 생겼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SKT 관계자에 따르면 "각 부서마다 올해 목표를 실제 역량보다 20~30% 이상 올려 잡으며 회사 전체 분위기가 전쟁상황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거의 모든 계열사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회장의 새로운 용병술이 아직 초반이라 평가를 내리긴 어렵지만 의도했던 분위기 쇄신은 충분히 이룬 듯하다.

이번 인사의 백미는 SK텔레콤의 전 CEO였던 정만원(59) 부회장의 퇴진과 하성민(54)-서진우(50) 사장의 '투톱체제' 부상이다.

꼭 2년 전인 2009년 12월 19일, SK그룹은 '주요 계열사 CEO에 대한 교체 인사는 없을 것'이란 예고와는 달리 이번과 유사한 파격인사를 단행했었다.

당시의 주인공은 정만원 전 SK텔레콤 사장이었다. 그때도 최 회장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능력이 검증된 인물들을 승진시켰고 워크아웃 중이던 SK네트웍스를 3년 만에 조기졸업 시킨 경력의 정 사장을 발탁했다. 미국 뉴욕대 석사 출신이던 정 사장의 이력 또한 글로벌 역량을 필요로 하던 최 회장의 눈에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 회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은 이번 인사에 전격 반영됐다. 정만원 전 사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하성민-서진우 사장이 채우게 된 것이다.


이번에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하 사장은 최 회장이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준비하며 경영수업을 받던 선경텔레콤(SK C&C의 전신) 출신이다. 능력은 이미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

SK텔레콤 경영기획실장이던 2002년, 옛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작업을 진두지휘했으며 이후 2008년 제2시내전화사업자이던 하나로텔레콤과의 인수합병 기반을 닦은 것도 하 사장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구글과 연합해 갤럭시S를 안착시키며 아이폰을 앞세운 KT의 파상공세를 정면에서 막아낸 전적도 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다음 타자는 하 사장외에 대안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해 일찌감치 CEO감으로 낙점받았다.

전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인 경쟁사 CEO들(KT 이석채 회장, LG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과 달리 평사원의 신화를 이룩한 인물인 점도 눈에 띈다. 본인 스스로도 "내 뒤에는 배경도 연줄도 없지만 4,600여 직원과 관계사들이 있다"고 할 정도다.

이번 인사에서 하 사장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은 서진우 사장이다. 요즘 SK텔레콤이 이동통신회사에서 플랫폼 기반 회사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맡은 플랫폼 사장이란 직함은 적지 않은 비중을 지닌다.

플랫폼 사업은 위계상으로는 하 사장 밑이지만 사실상 서 사장의 독립체제로 운영되는 형태다. 하 사장과 마찬가지로 선경텔레콤 출신인 서 사장은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 재임 시 싸이월드의 인수합병을 주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출신으로 해외에도 밝은 강점을 갖고 있다.

재계에서는 재무와 경영전략 등을 거친 하 사장과 SK그룹 내 대표적인 '해외통'인 서 사장이 협력과 경쟁을 거치며 어떤 시너지효과를 일으킬지 주목하고 있다.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파격적인 인사개편과 투톱 간 끊임없는 경쟁을 유도하는 최 회장의 용병술이 이번에는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최태원 회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을 인용하며 "붕정만리(鵬程萬里) 향해 정진하자"고 호기롭게 외쳤다. 날갯짓 한 번에 몇 천리를 가는 '붕'은 상상 속의 물고기인 '곤'이 변해서 된 전설의 새다. '곤'이 '붕'으로 변한 것처럼 이번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새롭게 변한 SK그룹이 하성민-서진우 라는 양 날개로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biz&ceo뉴스/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