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규 회장,금융당국에 백기투항?

저축은행 부실 해소놓고 "예보 공동계정 강력 반대하다 꼬리내려"

2011-01-18     임민희 기자
저축은행 부실해결을 위한 '예금보험기금 공동계정 신설' 방안을 놓고 금융당국과 은행권사이에 전개됐던 치열한 '힘겨루기'가 최근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공동계정 신설 반대에 사실상 총대를 맸던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사진)이 최근 들어 금융위원회의 완강한 공동계정 신설 추진 방침에 한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회장이 이끄는 은행연합회와 정부간 앙금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도 있어 향후 사태추이가 주목된다.


신동규 회장은 금융당국의 '공동계정 추진' 의지가 확고하자 사후정산 방식의 '영국식 공동계정 신설'을 제3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예보기금 도입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나타내면서 신 회장의 제안은 묵살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금융위가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처분을 계기로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자 신 회장은 결국 "국회 처리에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완강하고 저축은행 문제가 시급한 만큼 더는 막을 명분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를 놓고 금융권에선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 가장 큰 공적자금 투입 혜택을 봤던 은행권이 지난날을 잊고 권역별 이기주의를 앞세워 '저축은행 문제'를 나몰라라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 즉 정부 정책에 반발해 온 은행연합회와 신동규 회장, 은행권 등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생각할 지도 관심거리다. 이들의 반발이 오래 지속될 수록 저축은행 구조조정도 늦어지고 나아가 금융시장 안정도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은행업계에서는 저축은행 모럴해저드(도덕적 헤이)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실해결을 타금융권에 떠넘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는 불만도 쏟아내고 있다.

때문에 2월 임시국회에서 어떤 결정이 나든 금융당국과 은행권 간 불신의 골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신동규 '공동계정 반대' 속내는?

신동규 회장은 그간 언론 등을 통해 "권역별 예보기금 계정에서 50%를 떼어 공동계정을 만드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예보기금 공동계정을 만들려면 예금주나 보험 가입자의 의사를 물어봐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 등은 은행권 등 타금융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새로 들어오는 6개 권역별 예보기금의 50%를 공동계정에 적립키로 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은행연합회 측은 수정안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권 공동으로 대처할 필요는 있으나 국회에 발의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나 금융위 실무 수정안은 예금보험제도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권의 강력 반발로 '공동계정' 추진에 제동이 걸렸으나 지난 3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상황은 급선회했다.

김석동 위원장은 '공동계정'을 비롯한 '금융지주사 저축은행 인수' '공적자금 투입' 등의 추가 방안을 제시하며 금융권의 참여를 촉구했다. 이에 우리금융지주를 비롯한 KB․신한․하나금융지주 측도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신동규 회장도 지난 11일 "저축은행 사태가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어 예금보험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데는 은행장들이 동의했다"며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일시적으로 각 금융권이 회수 조건으로 예금보험기금을 갹출해 활용하는 영국식 모델을 정부에 제안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예보기금은 본래 사전적립방식으로 적립됐고 금융시스템 리스크에 대해 업계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신회장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금융위원회 김홍식 금융소비자과장은 "은행권이 말하는 '영국식 모델'은 사후정산방식인데 이는 부실 등의 위기발생에 대비해 사전적립을 해왔던 예보기금의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며 "현재 IMF(국제통화기금)에서도 사전적립을 권고하고 있고 영국 역시 사후정산방식에서 사전적립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은행도 외환위기로 인한 IMF체제때 혜택을 받았듯이 통합계정을 통해 저축은행 부실과 같은 위험에 대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예보료는 사고율에 비례해 결정되는데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5배로 높아 은행이 일방적으로 비용을 부담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동규 "국회처리 따를 것" 백기투항에도..금융당국과 불편한 관계 지속될듯

김석동 위원장은 금융권의 반발기류를 무마시키기 위해 지난 14일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6개월 영업정지' 결정을 발표, 향후 부실을 유발한 저축은행의 대주주와 경영진 퇴출 및 법적 처벌 방침을 밝히는 등 구조조정 추진의지를 내비쳤다.

이는 그간 저축은행의 모럴헤저드 문제로 지적됐던 기존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강화해 강도 높은 경영책임을 묻겠다는 금융당국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쯤 되자 금융권 내에서도 저축은행 문제 해결에 은행권 등이 권역별 이기주의를 지나치게 내세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가장 큰 공적자금 투입 혜택을 봤던 은행권이 이제 와서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당시 '과도한 몸집불리기' 등으로 국가적 부도위기를 초래했던 시중은행들에 90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이 투입된 바 있다. 은행권 역시 혈세를 지원받아 회생한 만큼 이제는 과거 국민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을 때가 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동규 회장은 언론을 통해 "예보공동계정 문제에 대해 더는 은행들간에 재논의를 하지 않겠다"며 "당국의 생각대로 입법되면 거기에 따를 것이고 입법부가 정부 원안을 수정한다면 거기에도 따르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따르겠다는 사실상 백기투항인 셈이다.

신 회장은 이번 '공동계정 신설' 건으로 득보다는 실을 입게 됐다. 금융당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놓쳐 연합회 수장으로서 체면을 구겼고 오히려 금융당국으로부터 얻은 것 없이 미운털만 박히게 됐기 때문이다. 향후 국회에서 정부안대로 통과될 경우 은행권의 불만과 향후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은행권과 금융위가 대결양상으로 비춰지는데 대해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며 "은행권이 제안한 '제3의 대안'에 대해 금융위가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이를 논의하는 게 맞을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김석동 위원장 등 금융당국은 은행권 등 금융권의 동의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국회에 계류된 '예금자 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정무위원들을 상대로 '공동계정'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측은 2월 임시국회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의원들을 충분히 설득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저축은행의 부실 규모가 워낙 큰 만큼 금융당국의 모럴해저드 해소 방안과 의지 등이 향후 변수가 될 전망이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