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광풍 경보, 주가 하락 땐 대책 없다

외국인들 매도조짐에 긴장...소수 종목 투자해 수익률 급락 위험

2011-01-26     임민희 기자
최근 고객 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에 대한 수요증가와 증시활황으로 고수익형의 '자문형 랩' 상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지만 향후 주가하락시 개인투자자들이 입을 손실과 피해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투자자문사의 조언을 받아 증권사가 운용하는 '자문형 랩'의 경우 40개가 넘는 종목을 편입하는 펀드와는 달리 10개 안팎의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기 때문에 주가상승 시에는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지만 주가하락 시에는 수익률 급락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다 원금보장이 되지 않아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매도를 염두에 둔 대주거래(주식을 빌려 투자한 뒤 주가 하락시 이익을 챙기는 거래방식)비중을 높이는 등 일부 매도에 나서면서 '주가하락'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단기수익률'만 쫓아 '묻지마식 랩 투자'에 나서는 등 과열양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증권사는 물론 은행권까지 자문형 신탁 또는 사모펀드 형태의 사실상 '자문형 랩' 상품출시에 가세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투자자보호를 위한 관련법 개정과 모니터링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상시감독체계'와 투자자들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 조속히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문형 랩' 열풍의 진실은?

2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기준 증권사들의 랩어카운트 계약자산 규모는 35조9천984억원을 기록했다. 이중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대 증권사들의 자문형 랩 잔액은 5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삼성증권(사장 박준현)이 2조7천억원으로 절대적 우위를 보였고 우리투자증권(대표이사 황성호) 9천133억원, 한국투자증권(사장 유상호) 8천400억원, 미래에셋증권(부회장 최현만) 5천91억원, 대우증권(사장 임기영) 3천8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자문형 랩'에 열광하는 것은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펀드와 달리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는 전문가를 선택, 조언과 함께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 직접투자에 비해 위험성이 낮은 것도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증권사들은 투자자 유치를 위해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삼성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은 올해 자문형 랩 시장 규모를 10조원으로 책정, 자금모집에 나서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지난해 초 자문형 랩 잔액은 4천500억원이었으나 연말에는 2조7천억원으로 급증했다"며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이라는 점에서 거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투자규모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문형 랩 투자자가 증가한 배경에 대해 "지난 금융위기로 펀드 수익률이 크게 하락했다는 점과 스타급 펀드매니저들이 대거 자문사로 이동하면서 이들이 제시하는 정교한 포트폴리오에 따른 수익률 등이 기대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의 자문형 랩 상품 인기가 치솟자 은행들도 비슷한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은행들은 '랩어카운트' 판매가 금지되어 있으나 신탁이나 사모펀드를 만들 때 투자자문사들의 자문을 받는 '자문형 특정금전신탁'을 판매 중이다.

국민은행(행장 민병덕)의 경우 한국창의투자자문 등 투자자문사 10여 곳을 선정해 자문형 신탁상품을 출시했으며 자문형 사모펀드도 판매에 들어갔다. 하나은행(행장 김정태)은 지난해 8월부터 '하나스마트 신탁'을 판매, 현재 2천200억원어치를 팔았으며 골드만삭스운용 등 3개 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신탁상품을 운용 중이다.

외환은행(행장 래리 클레인)도 지난해말 케이윈 등의 투자자문사와 연계한 신탁상품을 출시, 140억원 가량을 판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우리은행(행장 이종휘)과 신한은행(행장 서진원), 씨티은행(행장 하영구), SC제일은행(행장 데이비드 에드워즈)도 비슷한 상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규정상 랩은 팔 수 없지만 고객의 요구 등을 반영해 신탁상품을 판매 중"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매도거래 치중, 주가급락 땐 개인투자자 피해 우려

증권사와 은행들이 랩투자자 유치에 서둘러 나서는 것은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코스피 과열'에 따른 불안심리가 나타나고 있지만 주가활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어 투자자들이 여전히 몰리고 있다.

현재, 한달 가까이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웃돌며 사상 최고의 주가행진을 보이고 있다. 25일 현재 코스피는 전일대비 4.51포인트(0.22%) 오른 2086.67을 기록했다. 지난 19일에는 19.21포인트(0.92%) 상승한 2115.69로 장을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증권전문가들은 투자심리 호전으로 주가가 오르고 있으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가 상승에 따라 차익실현(매도전환)에 나설 경우 주가하락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매도 현상이 며칠 째 계속되고 있고 자문형 랩을 주축으로 한 개인자금의 유입으로 그나마 국내 증시가 견뎌내고 있지만 향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지속될 경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랩 과열' 현상이 심화되자 금융당국 역시 금융투자업규정(이하 금투업규정) 개정안 시행과 판매사들에 대한 모니터링 등에 나서고 있다.

금감원 자산운용서비스국 김영석 금융투자서비스국장은 "랩상품에 쏠림 현상이 많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랩 특성상 주가하락시 큰 손실이 우려되기 때문에 투자자보호 등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 18일부터 시행 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개정안에 따라 증권사 등이 랩상품 판매시 투자광고행위 규제와 투자자 1대1 자문 강화, 랩 투자자들을 분기별로 1번씩 접촉해 투자환경과 목적 등을 파악, 투자자들을 유형화해 투자목적과 재산상황 등을 구분, 그룹핑(그룹화협업)을 통해 포트폴리오 만들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 증권사가 투자권유 시 최고․최저수익률과 평균수익률을 동시에 제시할 것과 함께 투자광고시에는 특정계좌의 수익률이나 평균수익률을 잠재적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최근 랩 상품 가운데 목표수익률을 제시하는 목표달성형 랩상품, 즉 스팟랩(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상환) 판매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은행들의 자문형 특정금전신탁 판매가 증가함에 따라 고객에게 설명의무 소홀 등 불완전 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지도․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개인투자자, 리스크 충분히 인지 후 투자해야"

그러나 금융당국은 주가하락에 따른 개인의 투자손실 부분에 대해서는 '투자자의 선택'란 점에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관계자는 "랩 판매사들이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 등 관련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독할 계획"이라면서도 "자문형 랩은 개인이 리스크를 감안하고 투자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투자손실 부분까지 관여할 수는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금감원은 필요시 랩을 많이 보유한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미스테리 쇼핑이나 기획검사 등을 실시해 위반자에 대해 엄중 제재할 방침을 밝혔으나 이에 대한 상시감시체계 역시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자문형 랩'의 리스크 측면을 충분히 파악 후 투자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박사는 "자문형 랩이 뜬다는 것은 시장성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주고 있거나 많다는 것인데 시장에 주가하락이 발생하면 평균손실보다는 더 커질 수 있어 개인 투자자들이 랩 상품 가입시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며 "특히, 투자결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전문가들의 운용능력을 빌려서 투자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투자자의 책임이 상당부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송 박사는 "이 상품은 자문사들의 운용능력이 중요한데 과거 리턴을 얼마나 했는지만 보지 말고 주가하락시 리스크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를 증권사나 자문사로부터 충분히 듣고 판단하는 게 개인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자신의 투자성향을 파악해 펀드나 랩 등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랩도 대주거래 등의 펀드와 같은 방식으로 가야하지만 아직까지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런 상품들이 많이 나와야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