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정권 눈치보다 물가잡기 실패?
2011-03-04 임민희 기자
김 총재는 취임 초기부터 한은의 '독립성 강화'를 약속했으나 최근 한국은행이 김 총재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11월부터 주요 경제현안을 조사·분석해 정례적으로 청와대에 제출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은 노동조합은 물론,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가세해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한은의 청와대 눈치보기가 도를 넘어 청와대와 정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어린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 총재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한은의 위상과 중립성 약화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농축수산물 급등 등 물가상승 압력 증가로 인플레이션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리비아발 유가급등 악재까지 겹쳐 '물가안정 실패'의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전망이다.
김중수, 정권 '코드 맞추기' 한은 독립성은 뒷전?
김중수 총재는 지난해 4월,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 조율과 한은의 독립성 강화라는 중대과업을 안고 한국은행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친정부 인사라는 점에서 '한은 길들이기용 코드인사'라는 의혹을 받았으나 이를 의식한 듯 취임 초기 "한은의 독립성과 권위를 지키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한은의 중요 역할인 '물가안정'과 직결되는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에 대해서도 "대내외 경제 환경의 변화에 유의하면서 최적의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자신했다.
김 총재는 그리스발 남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금융상황을 고려해 기준금리 연2%의 저금리 기조를 이어나가다가 물가상승 우려 조짐이 일자 지난해 7월과 11월, 올해 1월 등 3차례에 걸쳐 각각 0.25%P씩 인상, 연 2.75%로 올린 바 있다.
그는 기준금리 의사결정과 관련, 한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해왔으나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현 경기국면에 대한 평가'라는 제목의 5쪽짜리 보고서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일 한겨레가 보도한 '브이아이피(VIP) 경제 브리프, 동향 정보'는 지난해 12월24일 작성한 보고서로 김중수 총재 지시로 지난해 11월부터 작성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조사국 조사총괄팀이 관련부서에 자료 작성을 요청, 취합해 매주 수요일경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 비서관에게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은 노조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측은 '독립성 훼손'에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은 노조·경실련 "정부 눈치보기 도 넘어"
한은 노조는 현정부 들어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 정부가 '열석발언권(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권리)'을 부활, 행사하는데 대해 한은이 기준금리 결정 등에서 정부입김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지난달 15일에는 서울 남대문로 소재 한은 본관 로비에서 '중앙은행 독립성 회복을 위한 조합원 전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위상 악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노조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은 독립성에 대해 응답자의 91.8%가 부정적 견해를 표명했으며 한은의 위상이 100점 만점에 31.3점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보고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김 총재가 한은의 기본책무를 잊고 '정권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제기됐다.
노조 관계자는 "정부에 정례적으로 보고를 하는 것은 한은의 독립성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이 언론에 나오기 전부터 노조에서 경영진 측에 우려를 표명해왔다"며 "일단 내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 짓고 지켜볼 생각이지만 향후에도 김 총재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지속된다면 적극 문제제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경실련 측은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한국은행의 청와대 눈치보기, 도를 넘었다"며 "김중수 총재의 청와대 보고에 대한 직접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실련 측은 "한은이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정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해 통화정책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면, 김 총재의 퇴진운동 등 한은의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날을 세웠다.
이날 민주당과 진보신당 등 정치권에서도 한은의 '정부 눈치보기' 행태와 물가정책 실패를 꼬집었다.
김중수 "독립경영하고 있다" 해명불구 '물가대란' 책임론 부상
반면, 김중수 총재는 지난달 28일 전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독립경영은 당연히 추구해야할 목표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만족도가 당연히 다를 것"이라며 "과거에 비해 독립경영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와 경제전반에 대한 정보교류는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으로 한은의 입장을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었던 건데 'VIP 경제 브리프' 등의 용어를 문제 삼아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확대, 증폭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한은의 독립성 훼손 논란에 대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결정시 독점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상호 정보교류 등을 거치는 것은 당연함에도 일부에서 보고서 취지를 왜곡해 마치 정부의 재가를 받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김 총재와 한은 측의 해명에도 물가인상 압력에 따른 인플레이션 조짐이 일고 있어 일각에선 김 총재가 정부정책과 보조를 맞추다 물가인상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비 4.5%, 전월비 0.8% 상승해 지난 1월보다 물가 상승폭이 더 커졌다. 농축수산물 급등 등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리비아 등 중동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도 상승하고 있어 향후 물가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은 금통위는 중국의 긴축정책 강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과 두 달 연속 기준금리 인상시 기업의 대출이자 부담 증가 등 경제전반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지난 2월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나 정부 의지가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3월에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