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220만 아이폰 가입자 속였나?
'구입 당일 교환'이 '애플 정책'이라고 우기다 느닷없이 14일로 연장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이 막강한 초나라와 접전을 벌이게 됐다. 승리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호언에게 물었더니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
고민하던 문공이 다시 이옹의 생각을 묻자 그는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퍼내 고기를 잡는다)'라는 고사성어를 만든 유명한 일화다. 이후 '갈택이어'는 눈앞의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하는 고사성어가 됐다.
요즘 KT가 하고 있는 일련의 정책들을 보며 문득 이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2009년 11월 28일 KT는 국내에 아이폰을 처음 출시해 지난해 시장점유율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아이폰은 출시되자마자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스마트폰시장을 뒤흔들어 놓았고 아이폰을 들여온 KT 또한 소비자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아이폰의 낯선 AS방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이 역시 KT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애플의 정책이라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휘갑치면 충분했기 때문. 어차피 아이폰을 원하는 소비자는 넘쳐났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이폰을 공급하는 KT로서는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통신업계 부동의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아이폰을 출시하기로 하면서 상황은 180도 변했다. SK텔레콤은 후발주자로서 소비자 불만의 핵심인 아이폰 AS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애플의 명성에 기대여 안주했던 KT는 그때마다 대응전략을 부랴부랴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며칠 전 있었던 '교환일자' 변경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능상 문제가 발생해도 구입 당일에만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면서 이것이 '애플의 정책'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KT는 SK텔레콤이 '당일 교환'을 '7일 내 교환'으로 늘리자마자 바로 다음날 '14일 내 교환'으로 반격했다. 재밌는 것은 '당일 교환' 개선 문제가 그동안 소비자들이 원성이 가장 크게 끓었던 사안이고 작년 10월에는 국가권익위원회의 권고까지 있었지만 KT는 그때마다 '애플의 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여유 있게 빠져 나갔던 점이다.
그렇다면 SK텔레콤이 '교환일자'를 늘리자마자 바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소비자 만족을 위한 애플과의 기나긴 교섭이 때마침 이때 마무리되어서일까?
놀랍게도 '당일 교환'은 애플의 규정이 아니었다. 그동안 애플의 공식 판매처인 '애플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국내의 여타 제조사들과 마찬가지로 문제 발생 시 14일 내에는 '반품 및 환불'해 주고 있었다. 애플은 각 나라의 사정에 맞게 '반품 및 환불' 날짜를 적용했고 전자제품에 대해 14일의 환불기간이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14일 내 반품 및 환불'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KT가 해왔던 '애플 탓'이 거짓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원래 싸움에는 속임수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라이벌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소비자에 대한 속임수라면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KT가 부랴부랴'14일 내 교환'을 앞세웠지만 오히려 소비자의 배신감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기 몇 마리를 건지기 위해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낸 전략이나 다름없다.
아이폰을 사이에 두고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된 KT와 SK텔레콤. 속임수를 써서 당장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닌 정직한 방법으로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아가는 쪽이 궁극적인 승자가 되지 않을까?[biz&ceo뉴스/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