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감사, 금감원 낙하산 금지해야
금감원, 감사 역할 강화해 부실 예방? '제식구감싸기'로 실효성 논란
2011-03-11 임민희 기자
그도그럴 것이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감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 금융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작 상당수 금융사들의 감사위원 자리가 전직 금융감독원 및 금융위원회, 감사원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는데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이들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방안이 실효를 거둘지 극히 의심스럽다는 게 금융권의 반응이다.
이에따라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반에 금융당국 출신인사가 감사자리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그간 금감원출신 감사가 있는 금융기관에서 금융사고가 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금융사 감사역할·책임 강화로 금융사고 막는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각 금융사들은 최고경영자(CEO)의 경영활동을 견제하고 임직원들의 내부비리 등을 효과적으로 통제, 감시하기 위해 감사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일부 금융회사의 경우 감사가 대주주의 영향력 하에 있거나 영업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감사의 독립성 침해 우려가 있고 인력부족, 순환근무 등으로 감사조직 자체가 취약하고 전문성도 낮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7일 감사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 감사활동에 대한 책임감 부여 등 감사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주요 방향은 상시감시, 특별감사 등 자체감사 실적과 내부통제시스템 평가에 대한 적정성 등을 집중 점검하고 감사의 활동이 부진한 경우 양해각서(MOU) 체결 등을 통해 감사활동의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감사역할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종합검사시 감사역할에 대한 경영실태평가를 강화하고 감사의 고의․중과실이나 내부통제시스템 운영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경우에는 행위자와 동일한 수준의 제재를 부과할 방침이다.
잇따른 금융사고, 감사제도 있으나마나
금감원이 '금융사 감사 역할강화 방안'을 내놓은 것은 최근 8개 저축은행이 부실경영 문제로 무더기 영업정지를 당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이를 반영하듯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저축은행 감사에 금감원 출신이 있지만 내부통제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현재 금감원 출신 저축은행 상근감사는 19명으로 영업정지된 8개 저축은행 중 부산2저축은행, 대전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이 금감원 출신 감사를 두고 있다.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당국 출신 직원들을 저축은행 감사에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출신 감사 문제는 앞서 지난해 발생한 국민은행(은행장 민병덕)과 우리은행(은행장 이종휘), 신한은행(은행장 서진원), 경남은행(박영빈 행장 직무대행) 등 주요 은행권의 전․현직 임직원들의 경영부실과 비리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중점 거론된 바 있다.
이들 은행에서 각종 문제점이 발생했는데도 금감원 출신 감사들이 이를 효율적으로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은행에선 금감원 출신 감사가 직접 나서 금감원 직원들을 상대로 접대를 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8월 19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강정원 전 행장을 비롯한 은행 전․현직 임직원 88명이 부실경영에 따른 큰 손실을 초래해 무더기 징계를 받았고 우리은행과 경남은행 역시 부동산 PF대출 비리 등 금융사고가 발생해 관련 임직원들이 중징계를 받았다.
신한은행을 비롯한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경영진의 비리 문제를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 결국 핵심경영진들이 모두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최근에는 IBK투자증권(사장 이형승) 직원이 투자자를 상대로 484억원의 투자금을 편취, 그중 3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IBK투자증권 직원의 말만 믿고 증권사 계좌가 아닌, 직원의 은행계좌로 거래를 해 피해를 키웠지만 이러한 유사 범죄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증권사 자체적으로 직원들에 대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처럼 금융권에서 온갖 경영상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해당 은행과 금융기관 감사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추궁도 이뤄지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금감원 출신 인사가 더이상 금융회사 감사를 맡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권 감사 상당수 금감원 출신, '낙하산 인사' 관행이 큰 문제
이런 가운데 금감원이 상시감사와 적절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해 금융사의 CEO 및 감사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의도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전직 금감원 및 금융위, 감사원 출신들이 금융사 감사로 영입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관행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자칫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은행, 보험 등 주요 금융권의 감사위원 중 60% 이상이 금융당국 또는 감사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전관예우' 차원에서 금융회사들의 비리를 눈감아 주거나 축소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은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대형사건이나 비리가 적발된 금융회사의 경영진을 징계할 때도 부실감사로 사태를 키운 감사위원 등에 대해선 유독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는 점도 낙하산 인사의 후유증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사들은 '전문성'을 내세워 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영입하고 있지만 실상은 금융사고 발생시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감사인력 보강과 전문성 강화 측면에서 전직 금감원과 감사원 출신 등의 인력을 활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순수성 보다는 '어떤 대가'나 '노후보장성'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를 용납하기는 어렵다는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이때문에 전직 금감원 출신들의 금융사 감사 취업 제한을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전 금융사로 확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제라도 금융회사 감사 제도의 문제점과 감사활동강화방안 마련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금융사의 감사인력들이 여전히 전직 금융당국 출신 인사로 채워진다면 그간 감사 제도에서 나타났던 문제들이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고 회의감을 나타냈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