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입 열면 나라가 떠들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화법은 짧고 의미심장하게 '화두'를 던지는 스타일이다.
평소 조용한 말투를 지녔지만 중요한 순간 그의 화법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 시킬 정도의 직설법으로 변하며 카리스마를 발한다.
그렇다고 그의 말에 즉흥이란 없다. 한 마디 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이듬해 제2의 창업을 선언한 이 회장은 변화와 개혁을 강조했지만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한 끼에 불고기 3인분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이 회장이 하루 한 끼 간신히 먹을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급기야 19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10㎏이상 체중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 그는 미국 LA의 한 백화점에서 삼성전자 제품이 소니 등 일본제품에 밀려 구석에 방치돼 있음을 보고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결국 이 회장은 그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강도 높은 발언과 함께 신경영을 선언했다.
하지만 2년 뒤 소위 '북경 발언'이라 불리는 직설화법 이후 이 회장은 오랜 기간 침묵하게 된다.
이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 디아오위타이 국빈관에서 국내 언론사 베이징 주재 특파원과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며 당시 김영삼 정부를 비판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당시 삼성은 청와대에 공식 사과까지 하며 사태를 마무리 했지만 이후 이 회장과 기자들의 접촉은 원천봉쇄 돼버렸다.
그런 그가 16년 만에 정책 현안에 대한 직설화법을 구사했다.
지난 10일 이건희 회장은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참 어려운 질문"이라며 "그래도 과거 10년에 비해서는 계속 성장해 왔으니까 흡족하기 보다는 낙제는 아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으며, 이날 오전 비서관회의에서는 섭섭하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질문에도 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내가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 경제학 공부를 계속해 왔는데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부정적, 긍정적을 떠나서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초과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이 연초에 설정한 목표이익을 초과달성 했을 때 이익의 일부를 동반성장 기금으로 마련하는 제도다. 기금을 협력사를 위해 나눈다는 의미다.
재계는 그간 이 회장이 동반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 왔고 정부 정책도 지지해 왔기에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작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조찬 간담회 및 올 초 신년사에서 그는 "2차, 3차 협력업체까지 세밀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 경영진들은 협력업체협의회 31주년 기념식 및 정기총회에 참석해 동반성장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정작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이 회장이 동반성장에 대한 명확한 소신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발언이란 분석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대기업이 돕는 게 동반성장이라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이익을 나눠주는 방식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날 이 회장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참 어려운 질문"이라며 "그래도 과거 10년에 비해서는 계속 성장해 왔으니까 흡족하기 보다는 낙제는 아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소신발언은 2007년 한국경제의 '샌드위치 위기론'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서울 용산 백범 기념관에서 열린 투명사회실천협약 행사에 참석해 삼성전자 주력업종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질문을 받고 "삼성이 어려우면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신을 못 차린다"고 말했다.
당시 이 발언은 필요이상의 위기의식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한편으론 한국경제가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견제와 중국의 추격 사이에 끼여 소득 '2만 달러의 함정'에 걸려 주저앉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사회 전반에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지난 1월 칠순 생일 만찬 때는 "한국이 정신을 안 차리면 또 한 걸음 뒤쳐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