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지주 출범 앞서 인적쇄신 시급

중앙회 회장과 지주사 대표 낙하산 인사 우려..농협법 재개정 논란

2011-04-06     임민희 기자
최근 국회를 통과한 농협협동조합법(이하 농협법) 개정안을 놓고 '농협개혁'의 근본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가운데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가 내년 3월 '1중앙회-2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해 후속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농협 내부의 적지않은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신용(금융)과 경제(농수산물, 유통 등)사업을 분리해 중앙회 산하에 농협경제지주회사와 농협금융지주회사를 둘 수 있게 했다는 것.

특히, 총자산 229조원 규모로 출범하는 농협금융지주사는 우리․KB․신한․하나금융지주와 더불어 '빅5'로 도약하며 금융권 빅뱅의 한축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농협중앙회>


사실 농협중앙회는 1988년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회장이 모두 구속되는 굴욕을 당했고 온갖 비리와 횡령 등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아 '비리 백화점'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또한 지난 1994년부터 농협중앙회의 신․경 분리문제를 시작으로 '농협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정치권의 무관심 등으로 17년이 지난 올해 3월 11일 농협법 개정안이 비로소 통과됐다.

이에 따라 농협이 그간 전횡을 끊고 얼마만큼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되고 있으나 농협법 개정안 자체가 농협중앙회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농업의 경쟁력을 살리기에는 모순이 많다는 것이 농업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향후 중앙회 회장과 지주사 대표직 역시 상당부분 친정부 '낙하산 인사'로 채워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때문에 진정한 농협개혁을 위한 농협법 재개정과 농협중앙회의 인적쇄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중앙회, 신․경분리로 금융사업 확대, '농협개혁'은 관심 밖?

현재 농협중앙회는 정부와 신․경 분리 및 지주사 전환을 위한 자금조달 등 후속 논의를 진행 중이다.

농협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현 농협중앙회를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과 농축산물 및 가공품의 판매, 가공, 유통을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회사의 우선적인 사업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또 농협중앙회는 법 시행 후 3년 내에 판매․유통관련 경제사업을, 5년 이내에 나머지 경제사업을 농협경제지주사로 이관토록 했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중앙회의 자체 자본금 12조원 중 30% 이상을 경제사업에 우선 배분토록 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일단 자산실사를 실시, 사업분리시 부족자본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자체조달계획을 수립해 관계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라며 "정부가 자본요청을 받아들여 예산에 반영되면 조직분리와 인력배치 등 최종안을 마련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측은 사안별로 올해 3분기까지 최종안을 마련해 4분기부터 시물레이션을 통해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농협금융지주사의 경우 기존의 농협은행에서 카드사업과 보험사업을 분리해 3월 2일 출범 전까지 금융당국에 인․허가 승인작업을 마칠 예정.

이에 따라 농협은행과 NH보험(농협생명보험과 농협손해보험 설립), NH카드, NH증권을 자회로사 편입시켜 명실공히 300조원 규모의 종합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출 전망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많은데 대해 "일부 단체들에 국한된 주장으로 개정안은 정부와 국회에서 인정받은 법안"이라며 "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운영을 어떻게 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이번 농협법 개정안이 '지주회사' 형식의 신․경분리에만 급급해 정작 농협 본래의 경제사업 활성화와 유통구조 해결, 농협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 등은 전혀 진전이 없는 '개악안'이라며 폐기,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농협 '비리백화점' 오명, 부실채권도 압도적

농협중앙회는 농업인이 자주적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1961년 8월 농업은행과 농협이 통합된 통합농협으로 발족됐다.

하지만 농협은 농수산물 유통, 판매 등 경제사업보다는 신용사업 부문에 치중, 수익사업 위주의 돈벌이만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 등 '농협개혁'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무관심과 관련 단체들의 이견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는 사이 농협은 크고 작은 금융사고와 비리 문제로 중앙회 회장이 구속되는 등의 오명을 안았다.

지난달 3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 역대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장과 국세청장"이라고 지적했듯이 중앙회는 1988년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회장이 모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중앙회 전․현직 임직원들의 경우 비리․횡령사건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농협 직원의 내부 횡령 건수는 66건으로 피해규모만 160억원에 달한다.

또한 지난 2004년에는 중앙회가 파생상품 거래를 부당하게 취급(2001년 8월~2004년 4월)한 사실이 금감원 종합검사 과정에서 적발돼 임원 3명과 직원 16명이 무더기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중앙회가 부도직전의 한보철강에 약 600억원을 지급보증해 주고 간부들이 수천만원씩 커미션을 수수하는 등의 비리․횡령 사건이 발생해 단위조합장을 비롯해 농․축협 전현직 임직원 등 총 537명이 입건되고 이중 245명이 구속돼 세간을 놀라게 했다.

부실채권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발표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0년 12월말 현재 농협의 부실채권 규모는 3조6천억원으로 특수은행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부실채권 비율도 2.57%로 수협(3.86%)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사실 농협의 부실채권 문제는 지난 2010년 국감에서도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농협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건설업에 몰려 부실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한나라당 윤영 의원 등이 제시한 농협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8월말까지 농협의 PF대출액은 9조532억원이었고 이중 부실채권은 8천225억원에 달했다.

부실채권비율은 9.1%로 2006년 0.1%(46억원)와 비교해 불과 5년 만에 127배 증가했다. 특히, 부실채권이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14개, 법정관리 11개 등 모두 25곳에 몰려 있는 등 이들 기업의 대출잔액만 3조 1천3억원을 차지해 빈축을 산 바 있다.

농협중앙회 "농업경쟁력 강화" VS 농민단체 "중앙회 권한만 강화"

'농협개혁'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7년 12월 정태근 전 중앙회 회장이 비리사건으로 법정구속된 후 지금의 최원병 회장 체제가 들어서면서다.

특히 지난 2008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해 "농협은 농업인을 위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계기가 되어 농협개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2년이 흘러 농협법 개정안이 탄생했다.

정부와 농협중앙회 측은 "금융분야와 농업분야를 분리해 유통을 비롯한 농업의 경쟁력이 강화됐다"고 평가했으나 정작 농민단체들은 "껍질만 신․경 분리일 뿐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곽길자 정책국장은 "이번 개정안은 말만 개혁이지 인사권을 비롯해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농협중앙회의 지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 것"이라며 "지주사로 전환되면 정부가 출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선정이나 지주사 대표 선정시 낙하산이 올 가능성이 크고 '조합장 동시선거' 부분도 투명성이나 민주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곽 정책국장은 "중앙회는 비사업적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인적쇄신을 비롯해 중앙회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 탈권력화 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도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완벽하게 분리하지 않고 단지 큰 지주회사 밑에 2개의 지주사를 둔다는 건데 지주사 전환자체가 어떤 개혁 의미나 그간 농협이 안고 있는 문제해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지주회사는 일단 제도자체가 '무늬뿐인', 즉, 정부가 기업에 너무 많은 규제완화를 해준 덕분에 지주사 도입 취지를 살리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경영자들이) 지주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마인드나 경험이 없다"고 지적했다.

농협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와 농민단체가 엇갈린 시각을 보이는 가운데 이번 농협법 개정안이 '농협개혁'의 도화선이 될지, 아니면 농민들을 '두번죽이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