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덕 회장의 가장 큰 적은 진로출신 '싸움닭'들
진로 인수 때 떠난 싸움꾼들이 두 눈에 불 켜고 공격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하락하는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두 회사의 통합 결정을 한 박문덕 하이트홀딩스 회장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일까?
이들은 바로 진로 출신 ‘싸움닭’들이라는 게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박 회장이 지난2005년 진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진로를 떠났고, 경쟁사들이 이들을 영입해 공격의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
이들은 하이트-진로그룹의 맥주·소주 시장점유율을 끌어 내리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다. 누구 보다 적의 약점을 집중공격하고 강점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경험과 비법을 꿰고 있는 싸움꾼들이다.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하이트맥주와 진로를 합쳐 오는 9월 연매출 2조원 규모의 ‘소맥 폭탄’을 터트릴 예정이지만, 과연 이들을 제압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주류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9년 하이트-진로그룹은 롯데 등 누가 시장에 들어와도 자신이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전세는 바뀌었다. 주류업계 일각에서는 ‘주류 사관학교’라 불린 진로의 알토란 인재들을 놓친 게 화근으로 보고 있다.
선전을 펼치고 있는 경쟁사 롯데주류BG와 오비맥주 영업담당 임직원 대부분이 진로 출신이다.
▲한기선 전 두산주류BG 사장, 오장환 롯데주류BG 서울권역 본부장, 허관만 오비맥주 상무,
김광식 전 선양 사장, 장인수 오비맥주 부사장(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참이슬 신화를 일궈 낸 한기선 두산중공업 사장은 ‘소주업계의 대부’로 불려왔다.
한 사장은 1992년 진로에 입사해 기획조정실 부장, 마케팅 상무, 전무, 영업본부장 부사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영업통. 그는 98년 7월 ‘참이슬’로 진로의 시장점유율을 1년 만에 30%선에서 40%대로 끌어올린 ‘신화’를 일궈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부도로 무너졌던 진로의 영업망을 회복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주류 도매상을 만나고, 일선 영업 직원들을 독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2002년 초 오비맥주로 자리를 옮겼다. 하이트맥주에 고전하던 오비맥주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전격 영입했다. 오비맥주에서도 한 사장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 사장은 2004년 다시 두산의 주류업체인 두산주류BG의 지휘봉을 잡아 역시 진로 출신인 허관만 상무와 오장환 상무 등을 영입해 진로 소주를 공격 하는 ‘저격수(?)’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두산주류BG는 롯데로 인수됐고 진로의 가장 위협적인 라이벌이 됐다. 진로의 시장 점유률은 2005년 3월 57.8%까지 치솟았으나 작년 말엔 40%대 초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호림 오비맥주 사장도 지난해 진로 출신 임원을 대거 영입했다.
진로 영업담당 임원을 거쳐 하이트주조와 하이트주정 대표이사를 지낸 장인수씨를 지난해 1월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스카웃했다. 6~7월에는 부산권역과 충청·강원 담당으로 임원으로 진로 출신의 장철순씨와 허관만씨를 영입했다.
이 사관학교 출신들의 선전으로 오비맥주는 하이트맥주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2006년만 해도 점유율 격차가 19.46%포인트까지 멀찍이 떨어졌으나 올 1월에는 4.3%포인트까지 좁혀 대역전극을 향해 달리고 있다.
기획통으로 유명해 ‘술판의 여우’로 통하는 김광식 전 선양 사장도 진로 출신이다.
선양은 1973년 설립된 대전·충청지역의 향토기업. 2004년 선양을 인수한 조웅래 회장이 김광식 진로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해 진로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김 사장은 선임 4년만에 소주 '맑은 린' 'O2린(오투린)' 등을 앞세워 지역내 소주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 조 회장의 기대에 부응했다. 김 사장은 6년간 선양의 기업 이미지 쇄신과 매출신장에 기여하고 지난해 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왼쪽부터 김인규 하이트맥주 사장, 이남수 진로 사장, 손봉수 하이트맥주·진로 생산담당 사장
박 회장은 이번 물갈이 인사에서 하이트 출신들을 중용했다.
김인규 신임 사장은 1989년 하이트맥주에 입사한 뒤 상무, 전무를 거쳐 지난해 10월 부사장에 오른 뒤 6개월 만에 경영권을 잡은 최연소 CEO다. 김 사장은 하이트의 구원투수로 나서 올해 시장점유율 60%대 진입을 목표로 재도약을 자신하고 있다.
진로의 유통조직을 풀가동할 경우 오비맥주의 우세지역인 수도권에서 10%포인트의 점유율 상승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이트가 강세인 영남 등 지방에서도 강력한 영업력으로 오비맥주의 기세를 꺾겠다는 복안이다.
이남수 진로 신임 사장은 해외사업본부장 출신으로 전국 음식점 등 주류판매업소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진로는 올해 소주시장점유율 50%대를 넘기고 내년에 2%포인트 이상 더 확대할 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과연 사방에서 협공으로 들어오는 진로 출신 ‘적장’들의 공세를 저지하고 뜻을 이룰지 주목된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