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자동차 리콜 '치외법권'지역
수입차는 늑장 리콜, 국산차는 '쉬쉬'..국토해양부는 '팔짱'
소비자의 안전은 뒷전인 채 리콜만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자동차 업체들의 소비자 기망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해외에선 리콜을 발표해 놓고도 한국에서는 이를 늦게 알리는 등 '늑장 리콜'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국산차 업체들은 차량 결함과 품질문제를 파악하고도 무상 수리 조치를 쉬쉬하며 감추기 급급하다. 주무 관청인 국토해양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해외선 리콜하고 한국에선 "안전합니다"
"국내서 만드는 GM 크루즈는 문제없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른 한국지엠의 해명이다. 미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GM 공장의 단순 조립실수라는 것.
크루즈는 GM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한 한국지엠 라세티 프리미어의 새 이름으로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전 세계 5개 GM 공장에서 생산된다.
앞서 지난 10일 WSJ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을 인용해 "2011년형 GM 크루즈의 핸들이 주행 중 빠질 수 있어 해당 차량 2천100대를 리콜한다"며 "지난달 미국 내에서 핸들 분리 문제가 몇 차례 신고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GM측은 '국내서 만드는 GM 크루즈는 문제없다'며 리콜 가능성을 차단했다.
토요타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2009년 10월 토요타 일부 차량의 운전석 바닥 매트가 가속 페달에 걸리는 문제로 미국에서 리콜됐으나 국내서는 문제가 없다고 늑장 대처하더니 결국 6개월이 지나 나카바야시 히사오 사장이 직접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6개월 뒤 마이크 아카몬 한국지엠 사장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수입차 늑장리콜 만연…자동차관리법 구멍 '숭숭'
지난 1일 벤츠는 프리미엄 SUV M클래스 13만7천대를 미국서 리콜했다. 정속 주행 장치인 크루즈 컨트롤이 제동 시 오작동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벤츠코리아는 국내 리콜시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태평한 입장이다.
2월25일 토요타는 미국에서 운전석 바닥매트로 인한 가속페달 눌림 현상으로 217만대를 추가 리콜했다.
그러나 50여일이 지났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내에서는 리콜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리콜대상 차 중 2006∼2010년형 RAV4와 2004∼2006년형 렉서스 RX330은 국내서도 판매됐다.
이에 대해 한국토요타 관계자는 "같은 모델이라도 생산지에 따라 부품이 다를 수 있어 리콜조건은 각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며 "현재 리콜대상 차량의 생산지를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GM코리아는 미국에서보다 1년이나 늦게 국내 리콜을 실시키도 했다. 지난달 20일 이 회사는 국내서 2002년 5월10일에서 2006년 4월28일까지 제작된 캐딜락 CTS 560대에 대해 브레이크 오일 누유 결함으로 리콜했다.
당시 GM코리아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추운 지역에서만 리콜을 실시해 국내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은 뒷전인 모양새다.
포드코리아도 미국 내 발표 시점보다 8개월이 지난 작년 6월 익스플로러 등 1천128대를 같은 결함으로 국내서 리콜했다.
푸조와 BMW도 일부 차종에 대한 국내 리콜 발표를 미국에 비해 각각 두 달과 한 달씩 늦게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정부 당국의 무책임한 관리체제에서 비롯된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는 수입차 업체는 해외에서 실시한 리콜을 국토해양부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이에 대해 국토부 자동차정책과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를 파악하고 있으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의원 입법 형태로 관련 조항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산차, 무상 수리 대상 '쉬쉬'
작년 9월 현대차는 구형 싼타페 국내 판매분 전량인 29만4천300대에 대한 무상 수리를 실시했다.
2006년 9월 구형 싼타페가 핸들 조작 시 접지력을 잃은 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에서 심한 소음과 진동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제기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무상 수리가 실시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린 셈이다.
무상 수리는 소비자에게 공개적으로 알릴 필요가 없고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의 차량만 고쳐주는 것으로, 안전과 관련한 치명적 결함에 대해 실시하는 리콜과는 다르다.
한국소비자원이 작년부터 올 3월까지 무상 수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14번의 지연 사례가 적발됐다. 업체별로는 기아차가 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현대차가 4건, 르노삼성이 1건이었다.
한국소비자원 김종훈 자동차부문 조사위원은 "차 업체들이 결함을 알면서도 내부적으로 숨기는 사례는 조사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토해양부 산하 자동차성능연구소는 결함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자체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업체로부터 결함사실을 통보받은 뒤 발표하는 확성기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