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 '블랙리스트' 제도로 바뀌면…부익부빈익빈

2011-04-14     김현준 기자

휴대폰 단말기를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제조사에서 직접 구입해 개통하는 새로운 유통방식을 놓고 관련 업체들의 득실계산이 빨라지고 있다.

대형 이동통신사와 대기업 제조업체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입지가 유리해지는 반면 중소 단말기 업체와 영세 이통사 대리점들은 직격탄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요금 정책의 근본적인 개선과 경쟁 촉진을 위해 국제모바일기기식별코드(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 IMEI)관련 제도 개선에 나섰다.

방통위는 13일 제조사로부터 직접 산 휴대전화를 이동통신사에 등록하지 않고도 바로 개통해서 쓸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관련 사안은 다음 달 발표 예정인 정부의 통신비 개선 태스크포스(TF) 방안에 포함될 계획이다.

이 같은 새로운 유통 방식이 마련된 것은 국내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소위 '화이트리스트'가 휴대폰 가격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리스트'란 단말기 고유번호인 IMEI를 관리하는 통신사 자체 리스트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통신3사에 IMEI를 등록한 휴대전화 단말기만 개통과 사용을 할 수 있다. 모든 사용 단말기의 IMEI를 이통사가 리스트화해 관리하는 것. 가입자식별모듈(Universal Subscribe Identity Module: USIM)카드 및 가입정보에는 문제가 없어도 등록되지 않은 IMEI 단말기는 차단된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통신사가 단말기 지배력을 유지하는 근거가 된다. 단말기 제조사는 통신사와 협의해 출고가격을 정해 공급하고, 통신사 대리점을 통해 요금제에 가입해야 비로소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만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미국·유럽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분실이나 도난 등으로 사용 불가능한 휴대폰의 고유번호만 따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방통위를 비롯한 소비자단체들이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 여부를 고민하는 것은 그동안 이용됐던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단말기 가격 거품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소비자와 제조사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음으로써 출고가 거품, 쓸데없는 보조금 지급 등의 왜곡된 유통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돼 제조사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고 통신사는 요금제와 유심카드만 판매하게 되면 완벽히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다. 가격경쟁상황에 놓인 제조사는 무작정 고가의 출고가를 고집할 수 없게 되고 요금제나 약정도 단말기 구매와 무관해져 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나게 된다. 제조사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단말기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통신사는 서비스 품질, 통신요금의 다변화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


물론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기까지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단말기 제조사들은 자체 유통망과 마케팅비를 확보해야 하고 통신사들 또한 시스템 정비, 요금제 개편 등 할 일이 많다.

이 과정에서 중소 제조사나 통신사가 받을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단말기 제조사 관계자는 "삼성이나 LG 등 가전제품 유통망이 기존에 완비된 대형 제조사들 이외의 여타 중소 제조사는 유통에 많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며 "하지만 아직까지 제도변경이 가져올 구체적인 손익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통신관련업체의 명암도 갈린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단말기 매출이 감소할 여지는 있지만 그만큼 마케팅비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실제 매출 측면에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영세한 대리점들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휴대폰 개통이 주 수익원인 이들의 설 자리가 확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마이경제뉴스팀/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