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제약사에는 왜 CEO가 둘 일까?
제약업계의 투톱 경영이 다시 바람을 타고 있다. 한때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가 최근들어 다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국내 제약사 ‘빅 5’ 중 무려 4개 업체가 투톱 체제나 그에 준하는 시스템으로 경영을 일구어 가고 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상위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투톱 경영 체제가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다. 제약업의 특성상 경영 매니지먼트와 더불어 광범위한 의약관련 전문지식을 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는 녹십자는 창립 후 처음으로 도입한 투톱 체제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2009년 12월 창업주인 故 허영섭 회장의 타계 이후 허일섭 대표이사 회장이 뒤를 잇고 당시 조순태 부사장, 이병건 부사장을 승진시켜 실질적인 경영을 맡긴 투톱 시스템을 갖췄다. 마케팅에 특화된 전임 허재희 사장의 영역을 이병건 사장(사진 오른쪽)이 계승하고 연구 개발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 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조순태 사장(사진 왼쪽)을 투입한 것이다.
분리 경영의 첫 시험대가 된 지난해 녹십자는 전년 대비 23% 성장한 791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단순히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니라 영업이익 1천456억 원(22%↑), 당기순이익 1천47억 원(30%↑)을 기록해 내실도 함께 다졌다는 평가다.
이러한 사상 최대의 실적은 자체 개발한 계절 독감 백신과 신종플루 백신의 매출이 크게 늘고 전 사업분야에서 고른 성적이 실적 호조로 이어졌다는 것이 자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녹십자는 개발과 마케팅이라는 제약산업의 핵심 영역을 각각 특화 시키고 허일섭 회장을 중심으로 이를 유기적으로 재조직한 것이 조직 내부에 활기를 더해줬다고 분석하고 있다.
유한양행 역시 지난 2009년 3월 사상 처음으로 공동대표를 경영 전면에 내세운 투톱 시스템을 선보였다.
유한양행은 당시 차중근 사장의 임기 종료와 함께 영업․마케팅과 연구․개발 분야에서 각각 최고의 성과를 이룬 김윤섭 부사장(사진 왼쪽), 최상후 부사장(사진 오른쪽)을 후임으로 결정했다.
투톱 체제가 가동된 첫해 유한양행은 6303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5.81% 매출이 늘었고 지난해엔 6493억원으로 3.01%의 성장을 기록했다.
업계 평균 성장률에도 못미치는 다소 저조한 성적이며 총 매출 순위도 2008년 2위에서 해마다 한 계단씩 내려 앉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유한양행의 투톱 체제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내부 평가는 다르다.
유한양행 측은 리베이트 쌍벌제 등 업계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기에 산업 전반이 위축됐고 또 신종 플루 백신 등으로 일시적으로 특수를 누린 업체로 인해 단기적인 순위 변화가 있었을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6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투톱 경영을 펼쳐오고 있다. 2006년 당시 영업본부장으로 있던 임선민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동아제약 출신 장안수 사장을 발탁해 투톱 체제를 이뤘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장안수 사장과 임선민 사장의 자리를 대신해 연구소장직을 거친 이관순 사장(사진 왼쪽)이 한미약품을 이끌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은 노용갑 한미메디케어 사장(사진 오른쪽)을 영업과 마케팅 총괄 사장으로 임명하며 다시 투톱 체제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경우 투톱 경영에 대한 성과는 이렇다할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 투톱 체제가 정착된 2006년 이후 4년간 한미약품은 견고한 성장세를 이뤄왔지만 역시 투톱 체제가 다시 가동된 지난 해엔 사상 최악의 부진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대웅제약도 작년 6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윤영환 회장의 외동딸 윤영 씨와 이종욱 대표가 투톱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러한 조합은 전문 경영인과 오너의 결합이라는 제약 업계의 황금률을 이루고 있어 조직에 안정감을 꾀했다는 것이 대웅제약 내부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마케팅과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업종의 특성상 역할별로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상위 제약사를 중심으로 투톱 경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후발 업체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이경제 뉴스팀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양우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