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배드뱅크=저축은행 부실감독 감추기용?

2011-04-21     임민희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문제를 또 다시 은행권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원장 권혁세)을 비롯한 당국은 배드뱅크 설립 추진과 관련해 완벽한 세부추진계획도 세워놓지 않고 설익은 정책을 성급하게 발표해 금융회사들에게 혼선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은행권은 PF대출에 대해 충분한 담보를 확보하고 있어 배드뱅크를 통한 매각이 시급하지 않은데도 감독당국이 은행권에 배드뱅크 출자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은행의 팔목을 비틀어 PF관련 후순위 담보를 확보하고 있는 제2금융권을 지원하고 나아가 저축은행 PF부실감독책임을 덮기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낳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종 재원 마련을 위해 은행, 보험 등 6개 금융권역이 각각 예금보험료 45%를 따로 떼어 적립하는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가동한 데 이어 오늘 6월 설립을 목표로 8개 은행이 출자한 돈으로 은행과 저축은행 등의 부동산 PF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민간 배드뱅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권에서는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 전문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장영철)와 6개 은행이 출자해 만든 민간배드뱅크 '연합자산관리주식회사(유암코)' 등이 있음에도 금융당국이 새롭게 'PF 배드뱅크'를 만드는 배경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PF부실을 은행권에 떠넘기고 감독소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민간 배드뱅크' 설립이 금융업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금융당국자들은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은행 출자금으로 저축은행 부실 PF 해결?

이런 가운데 최근 '배드뱅크' 설립을 위해 금융감독원과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8개 시중은행 및 특수은행으로 구성된 PF 태스코포스(TF)를 발족, 세부적인 사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오는 6월까지 배드뱅크를 설립, 각 은행에서 출자금을 걷어 일단 4조원대의 부실채권을 매입한 후 PF사업장 매각 등 구조조정을 추진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TF팀 내에서 출자규모와 방법, 매입한 PF부실 채권에 대한 권한 행사 등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은행마다 보유하고 있는 PF부실채권 규모가 달라 출자규모를 책정하는데 이견이 많고, 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유암코' 등 민간배드뱅크가 있는데다 PF사업장이 매각되더라도 '담보'가 설정돼 있어 크게 손해 볼 게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 조사결과 지난해말 국내은행의 부동산PF 대출 부실채권은 6조4천억원이며 부동산PF 대출 연체금액은 1조6천억원(4.25%)을 차지했다.

은행별 PF 부실 채권규모는 우리은행 1조9천964억원, 농협 1조5천149억원, 국민은행 7천620억원, 기업은행 5천780억원, 외환은행 3천50억원, 하나은행 2천630억원, 신한은행 2천39억원, 산업은행 348억원으로 총 5조6천580억원에 달한다.

이들 은행이 TF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은행권 부실채권이 우선적으로 매입될 가능성이 높고 PF규모에 따라 차등 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출자비율 조정을 놓고 이견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은 PF사업장이 부도가 나도 담보가 잡혀있어 피해보는 게 거의 없지만 증권이나 저축은행의 경우 후순위로 되어 있어 사업 청산시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은행이 출자를 해서 배드뱅크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은행, 저축은행 등 여러 금융기관이 얽혀있는 PF부실 채권을 인수하기 때문에 사실상 저축은행 부실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계 "캠코․유암코 등 기존 구조조정기관 활용해야"

사실, 은행권에서는 이미 '유암코'라는 민간 배드뱅크가 설립돼 있다. 유암코는 지난 2009년 10월 농협중앙회․신한․우리․하나․기업․국민은행 등 6개 은행이 은행규모별 출자를 통해 1조5천억원을 조성해 설립한 부실채권(NPL) 사업 전문회사다. 이를 활용해 얼마든지 부동산 PF부실 채권을 매입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은행권은 지난 3월 임시국회를 통해 도입된 ‘특별계정’에 예금보험료의 45%를 떼어 적립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가 약속한 '정부출연금'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당초 각 금융권역에서 각출한 예보료와 정부출연금(2천억원)을 합해 올해 9천억원을 마련하고 여기에 12조원을 차입해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정부 출연금이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특별계정'을 반대했던 야당 의원들은 여당 측과 ‘정부출연금’을 내는 것과 저축은행 청문회를 여는 것을 조건으로 '특별계정' 도입에 합의한 바 있다.

또한 정부와 정책금융공사 등이 출자해 1962년 설립한 캠코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것도 의문시 되고 있다. 캠코는 지난 40년간 금융기관 부실채권 인수와 정리,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해왔다.

특히 지난 2009년에는 국회에서 ‘금융기관부실자산 등의 효율적 처리 및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설립에 관한법률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캠코는 총 40조원 한도의 ‘구조조정기금’을 2014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 PF부실 문제는 은행만 비틀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풀어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캠코나 유암코 등이 있는데 왜 민간 배드뱅크를 새로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특히 캠코의 경우 40조원이란 구조조정기금이 있고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부실 PF자산을 비롯해 2008년과 2009년 자체자금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쌓여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캠코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향후 감사원이나 국회에서 적법하게 집행이 됐는지 등에 대해 책임추궁을 할 것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은행 비틀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PF 배드뱅크' 설립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 관계자는 "부실PF 민간 배드뱅크는 부동산 PF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의 하나로 실무적인 검토단계에 있는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금융위 측은 지난 18일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국내 5대 금융지주회사 회장간 조찬간담회를 가진 배경에 대해서도 "부실 PF채권 특화 민간 배드뱅크 방안과 관련해 논의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민간 배드뱅크' 설립을 놓고 이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은행권의 반발을 잠재우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가뜩이나 '특별계정'과 대형은행 등 금융지주사를 통한 부실 저축은행 인수로 금융당국에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칫 '설익은 정책'으로 인해 금융당국의 위신만 깎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